'이명박'에 해당되는 글 6건
- 2008/10/27 진보비판 note #1 (2)
- 2008/10/09 데미안과 이명박 (1)
- 2008/06/28 학습된 무기력, 학습된 복종의 사회 (6)
- 2008/03/08 라면값 걱정하는 부자들
- 2008/01/26 주간지 읽기 (1)
- 2007/11/16 yes24 아름다운 서재
진보비판 note #1
난 사상적으론 양비론적이고 실제적 성격은 양시론적이지만
양면 모두 교수에게나 한국사회에서 환영받는 방식은 아닌 것 같다.
다들 분명한 자기 입장이 있어야 한다고들 하고 애매한 입장은 기회주의정도로 배격하려고 한다. 긍정할 점은 서로 긍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입장은 기회주의로 배격당한다. J.M.케인즈도 '나는 입장을 바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뿐'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말이다.
아무튼 연재물이 될 각오를 하고 일단 써본다.
ㅡㅡㅡㅡㅡ
우리 사회에서 진보비판=수구라거나 보수비판=진보라는
공식이 성립하고 있지만 양극화논리에 농락당하는건 지겹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 사회의 지배적 논리는 보수/진보구도인데
대개 보수/진보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기준은 특별히 없고,
여러 쟁점에서 나와 반대편에 선 사람/단체를
보수 혹은 진보로 규정하는 방식을 쓴다.
노무현이 진보적이라고 규정당한것이 그 대표적 사례인데
노무현은 보수언론 비판 등 각종 막말들을 제외하면
한미FTA라거나 국보법, 이라크 파병 등의 쟁점에서 한나라당과
별 차이없는 행보를 보여주었다.
결과적으로 진보세력에게 고운 시선을 받지 못한것은 물론
할거 다하고도 보수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아웃사이더로 머물렀다.
대통령이면서도 아웃사이더.
강준만은 <아웃사이더 컴플렉스>에서 그런 노무현을
코리안드림과 권력욕의 화신으로 정의했는데
난 매우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노무현에게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진전시키는 것보다
자신의 권력욕을 충족시키는 것, 자신을 아웃사이더이게 했던
한국사회에 복수하는 것이었다는 말인데
김재호(지금 정입선생님)도 고졸 노무현이 법조계에서 받은 차별과
모멸감을 대통령이 된 이후에 숨기지 않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적절한 분석까지는 못되겠지만 어느 정도 사례로는 부족함이 없다고 본다.
이런 노무현을 비판하는 것은 앞으로 한국사회에 있어
이명박에게 '약속했던 코스피3000은 어디갔느냐?' '747공약이 코스피지수였냐'고 묻는 것보다
몇배는 더 생산적이며
'그래도 노무현이 개중 나았다'는 논리로 노무현을 감싸는 것은
'그럼 이명박보다 허경영, 정동영 등이 나았느냐'는 논리로 반박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하지 못하다.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했다'는 논리도 마찬가지로
'그럼 이명박에겐 왜 힘을 실어주지 않냐'고 반박될 때 그 타당성을 상실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노무현은 까여 마땅하며,
임기가 끝났으니 더욱 까여야 할 것이며,
이명박 정권이 '이러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까여야 할 것이다.
투비컨티뉴드..
다시 한 번 무엇인가 정말 근사한 생각 혹은 죄 많은 생각이 떠오르거든, 싱클레어, 누군가를 죽이거나 그 어떤 어마어마한 불결한 것을 저지르고 싶거든, 한 순간 생각하게. 그렇게 자네 속에서 상상의 날개를 펴는 것은 압락사스라는 것을! 자네가 죽이고 싶어하는 인간은 결코 아무 아무개 씨가 아닐세. 그 사람은 하나의 위장에 불과할 뿐이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 바로 우리들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그 무엇인가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지. 우리들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
읽자마자 전에 읽었던 칼럼이 생각났다.
김현진이란 분이 쓴 시사인(08. 06. 17) <우리 안의 이명박부터 몰아내자>라는 칼럼이다.
당시엔 연결시키지 못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김현진도 아마 데미안에서 영감을 얻은게 아닐까 싶다.
(전략)
그는 2008년의 대한민국에서 실로 운명적인 대통령이다. 온갖 불가사의한 어두운 그림자를 끌어안은 그에게 너끈히 대통령 자리를 넘겨준 것은 진짜로 경제를 살릴 줄 믿었던 국민도 아니고, 극렬 보수 지역 사람도 아니고, 그날 나 몰라라 투표 용지를 외면하고 놀러 가버린 사람도 아니다. 그에게 대통령 자리를 넘겨준 범인은 우리 안의 속물성이다. ‘내 아파트 값도 좀 확 뛰었으면’ ‘우리 아이는 자립형 사립고에 가고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했으면’ ‘나도 지금은 이렇게 살지만 이명박처럼 한가락하고 싶다, 아니면 내 자식이라도’ 하는 속물스러운 욕심, 저마다의 속물성이 이명박 대통령이 갖춘 온갖 속물성에 감응한 것이다. 그는 남녀노소 전 국민의 속물성을 자극할 만한 속물 판타지의 종합 선물세트와도 같았다.속물은 그 자신만 알 뿐 누구의 편도 아니다
고학생에서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성공한 기업인, 아들을 히딩크와 함께 사진 찍게 해주는 아버지, 딸에게 건물 하나 안겨서 월세 받아먹고 살게 해주는 자상한 친정 아버지, 아내가 몇 천만원짜리 핸드백을 들고 다니다 사진 찍혀서 구설에 오르게 할 수 있는 재력가 남편,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고 테니스를 즐길 수 있는 럭셔리한 취미생활. 우리는 이런 힘센 그와 한편이라 믿고 싶었고 그가 누리는 것을 누리고 싶었다. 그 소망이 마침내 그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잊고 있었다. 속물은 결코 누구의 편도 아니라는 것을, 속물은 오로지 그 자신만의 편이라는 것을.
거리에 나오는 것만으로는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이명박 퇴진을 외치기 전에 먼저 숨통을 끊어놓아야 할 것은 ‘우리 안의 이명박’이다. 우리 안에 한 명씩 가지고 있는 음습한 이명박, 그를 먼저 끝장내야 한다. 100만명 아니 1000만명이 촛불을 들더라도 우리 안에 있는 이명박을 먼저 퇴진시키지 않는 한, 저 컨테이너 철옹성 안에 있는 진짜 이명박이 퇴진할 확률은 제로다.
고전이란 건 언제 어디서나 자체발광이다.
이미 시선이 굳어져 못보는 것들도 많지만 그들은 우리가 보지 못하건 지켜보고 있건 늘 빛나고 있다.
학습된 무기력, 학습된 복종의 사회
셀리히만은 24마리의 개를 세 집단으로 나누어 왕복 상자(shuttle box)에 넣고 전기충격을 주었다. 제1 집단의 개에게는 코로 조작기를 누르면 전기충격을 스스로 멈출 수 있는 훈련을 시켰다(도피 집단). 제2집단은 코로 조작기를 눌러도 전기충격을 피할 수 없고, 몸이 묶여 있어 어떠한 대처도 할 수 없는 훈련을 받았다(통제 불가능 집단). 제3 집단은 상자 안에 있었으나 전기충격을 주지 않았다(비교 집단).
24시간 후 이들 세 집단 모두를 다른 상자에 옮겨 놓고 전기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앞서와는 달리, 상자 중앙에 있는 담을 넘으면 전기충격을 피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과연 모든 조건의 개들이 전기충격을 피할 수 있었을까?
실험 경과 전기충격 도피 훈련을 했던 제1 집단과 전기충격 경험이 전혀 없었던 제3 집단은 중앙의 담을 넘어 전기충격을 피했다. 그러나 통제 불가능 집단에서 훈련을 받은 제2집단은 전기충격이 주어지자 피하려 하지 않고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낑낑대며 전기충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왜 통제 불가능 집단에서 훈련받은 개들은 피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달아나지 않았을까? 이미 훈련 과정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전기충격을 피할 수 없음을 학습했기 때문에 도망칠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서 무력감을 학습하고 통제력을 상실함으로써 절망에 빠져버린 것이다.
[출처] 죽음에 이르는 병, 절망 - 셀리히만의 학습된 무기력 실험|작성자 양병훈
인간에게도 거의 비슷하게 적용되는 '학습된 무기력'현상은,
(형제에 관해 내려오는 속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형만한 동생 없다'는 속담.)
내가 증명할 수는 없지만 나도 경험적으로 공감하고 있는 이론이다.
반면에 상대방에게 무기력을 학습시킬 수 있다면 언제까지 쉽게 이길 수 있는 게임을 반복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군대에서 많이 경험할 수 있다... 전경들도 거의 마찬가지로 학습당하는 걸로 알고 있다. 전경들이 최루탄 물대포를 쏘더라도 그들을 욕할 일이 아니란 뜻이다. '이 명령은 부당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영화를 너무 많이 본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는 거다. 그들은 시키니까 하는 것이고 때론 시킨 이상을 할 수도 있다. 그 상황에 서지 않는다면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겠지만 '명령과 복종'의 관계를 학습하고 나면 '모두가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무서운 것은 그 '명령과 복종'을 학습하고 나서야만 이 사회의 남자로서 대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 무력감을 철저하게 학습하고 실천한 사람이 군대에서 흔히 쓰는 표현으로 'A급'이 되고 그 A급들은 물대포를 수직으로 내리꽂고, 유모차 부대를 보고도 물러서지 않으며 가끔 시키지도 않은 짓을 '센스있게' 잘 해낸다. 그래야만 A급이고 이 사회에서 귀여움을 받는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신념따윈 길바닥에 묻어버리는 것도 A급이 되고 싶다면 껌뱉듯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내 우려와는 다르게 전역과 동시에 저 복종심은 잊게 된다 ㅡ '머리로는'. 그렇지만 몸에 배인 습관이란 것은 쉽게 지우기 힘든 것이다. 그리고 2년간 학습한 무기력은 윗사람보다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끊임없이 말해준다. 고엽제 피해 전우회가 이명박이 시키지 않은 짓 ㅡ 촛불집회 반대 집회라거나 가스통에 불을 붙이고 MBC로 돌진한다거나 ㅡ 을 잘 하는 것은 다른 요인도 있겠지만 고엽제를 맞아가며 학습한 '명령과 복종'의 작용도 있으리라 믿는다. 그들은 국가의 부름을 받아 베트남으로 가서 무기력을 학습했을 따름이다.
'우리 모두는 피해자다'라는 식의 논리를 펴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서로를 향해 분노하지 말아야 한다. 전경들은 우리의 분노를 받을 대상이 아니고, 고엽제 피해 전우회는 우리의 손가락질을 받을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정작 분노해야 할 집단은 따로 있다.
주 열사로 대표되는, 매일 수십만 명씩 몇달간 동원할 수 있는 어떤 배후세력이 있다고 믿는 ㅡ 저런 세력이 있었다면 국회의사당에 당신들의 자리는 없었을거란 걸 모르나 ㅡ 모 당, '버스요금이 한 70원하나'라고 묻는 정 모씨가 있는 모 당, 구국의 일념으로 일어섰다는 대통령 삼수 실패생 이 모씨가 있는 당... 이렇게 해야 한다는 둥 저렇게 해야 한다는 둥 뭔가를 해야한다고 말하는 것 같지만 그들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이 개탄받아 마땅하다. 지금 이 땅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은 ㅡ 지나치게 낙관적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폭력진압을 하는 전경들도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더더욱!) 비폭력, 무저항시위를 이끌어내며 시민의식 발전에 이바지 하고 있다고 믿는다 ㅡ 그것이 무엇이건 도움이 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배후세력이 어쩌니하는, 말만 늘어놓는 사람들이 혼나야 한다.(나를 비롯해서...)
전경들은 시키는 대로 했다는 변명을 할 수 있지만 대한민국에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이들은 변명거리도 없고 그들이 숨을 구멍을 허락해줄 자비심 많은 쥐도 없다.
라면값 걱정하는 부자들
새 정부는 출범 전부터 까이기 시작했다. 요즘 주간지나 신문을 보면 장관들 문제로 말잔치를 벌이는 데, 언론의 자유가 살아있다는 것을 즐거워 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 정부가 노골적으로 썩었음을 개탄해야 하는 것인가 혼란스럽지만 경제만 살리면 되니까 걱정할 것이 안된다.
하지만 문제는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명박 정부가 경제 성장률 7%는 꿈이다, 6%도 어렵다, 5%도 쉽지않다고 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잃어버린 10년간 우리나라는 4~5% 성장률을 이어왔다.) 성장이 안된다면 분배라도 잘 해야 할 것인데, 새 내각의 장관들을 보면 물음표를 붙일 수 밖에 없다. 저런 사람들이 서민경제를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다음은 아래 칼럼을 읽기 전에 알아야 할 망언들.
박은경 전 환경부 장관 후보자
"친척이 김포 근처에 사는데 좋은 땅이 나왔기 때문에 사라고 권유해 구입했지만 직접 농사를 지어야 하는 줄 몰랐다.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 투기와는 전혀 상관없다."
이춘호 전 여성부 장관 후보자
"서초동 오피스텔은 내가 유방암이 아니라는 검사 결과가 나오자 남편이 감사하다고 사준 것이다." "일산 오피스텔은 친구에게 놀러 갔다가 사라고 해서 은행 대출 받아 샀다"
이명박 대통령
"평소 라면을 먹지 않는 계층은 라면 값 100원이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지만 라면을 많이 이용하는 서민들에게는 라면 값 인상이 큰 부담을 준다"
김성이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표절이 아니라 열정"
남주홍 전 통일부 장관 후보자 "부부 교수가 30억원이면 양반"
유인촌 문화부 장관 "배용준은 그보다 더 많지 않느냐" (그의 재산 신고액은 140억원)
경향신문(08. 03. 06) [이대근칼럼] 라면값 걱정하는 부자들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용기있는 고백으로 이끌었을까. ‘나는 땅을 사랑할 뿐이다’. ‘사랑은 무죄’라는 관습법이었을까.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랑은 없다는, 도저한 낭만주의였을까. 사랑은 아름다운 죄라서 용서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었까. 아니면, 땅을 사랑할 줄 모르는 서민들을 일깨우려는 충정이었을까. 부자들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를 계속해 보자. 어떤 남편은 암에 걸리지 않았다고 오피스텔 한 채를 아내에게 선물한다. 어떤 아버지는 수석입학 한 딸이 성적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국적을 포기하게 한다. 그들이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은 이 유별난 사랑만이 아니다.
부부교수가 25년간 30억원 버는 것은 식은죽 먹기라는 식의 독특한 관점, 여의도가 사람살기에 좋은 곳이 못된다는 남다른 주거관념도 그들을 특별하게 한다. 맛있는 과자를 먹었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구멍가게로 달려가는 어린이처럼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친구가 사라고 하는 바람에 오피스텔 한 채를 샀다는 동심의 소유자도 있다. 그들은 35만원짜리 비눗갑, 4000만원짜리 붙박이장이 있는 오피스텔을 가진 진정한 부자이지만, 의외로 싸구려를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놀랍게도’ 1억, 2억원짜리 싸구려 골프회원권을 갖고 있는 이도 있고, 한 해 혹은 두 해마다 전세 월세를 옮겨 다니는 서민보다 더 딱하게도 여름과 겨울철마다 옮겨 살아야 하는 처지에 있는 이도 있다.
- 몸에 밴 부유함 드러낸 장관들 -
그들이 솔직한 성격이라서 이런 부자의 생태를 공개한 것은 아닐 것이다. 말실수로 그랬을 리도 없다. 그럴 듯하게 거짓말하거나 임기응변하는 재주가 없어서 그랬던 것도 아닐 것이다. 그들의 몸에 밴 부자로서의 생활습관은 한 마디를 해도 드러날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꾹꾹 눌러 감춘다 해도 그들의 부유함과 그 부유함에서 묻어나오는 남다른 생활방식의 노출은 그들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무작정 비난해서는 안된다.
사실 딸의 스트레스 원인을 한국인이라는 사실에서 찾든 말든, 아내에게 오피스텔 한 채를 선물하든 말든, 계절에 맞게 여름집·겨울집을 바꿔가며 살든 말든, 자기 딸은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라고 우기든 말든 신경 쓸 게 없다. 서민들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일이다. 그게 부자들이 사는 법이려니 하고 가볍게 넘기면 그만이다. 그렇게 마음먹으면 설사 그들이 잠시 보통 사람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해도 어지러워진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 바라건대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은 서민과 깊숙이 관계맺어야 하는 운명이다. 국무위원이자 장관인 이 부자들은 자신의 삶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서민을 위해 일하고, 자신의 고민거리도 관심사도 아니었던 문제에 매달려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명박이 대통령으로서 첫 국무회의에서 이 부자들에게 민생을 챙기라고 지시함으로써 이 사태는 분명해졌다. 그들은 이제 라면값 100원 인상의 고통을 체감하지 못하면 상상력을 발동해서 이해해야 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서민들은 그들의 인생과 무관한 부자들의 말이라고 한쪽 귀로 듣고 다른쪽 귀로 흘려보낼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하게 됐다.
부자들이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가. 이명박은 서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서민 대통령 이미지를 갖고 있다. 부자정부 이미지가 부담스럽다면 ‘서민 대통령’만한 보호막이 없다. 선거 때 시장통 아주머니·할머니가 이명박의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며 서민 좀 먹고 살게 해달라고 호소하던 장면이 아직 생생하다. 사실 많은 서민이 자기의 꿈과 소망을 성장을 기반으로 한 경제살리기에 걸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이제 와서 7%성장은 이룰 수 없는 꿈이고, 6% 성장도 어렵다고 고백했다. 총선은 눈 앞에 있는데 5% 성장도 쉽지 않다고 한다. 이것이 이명박이 부자 내각에 민생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한 배경이다.
- 서민 고통 해결사 맡긴 부조화 -
우리는 곧 이들이 서민을 위해 애쓰는 장면을 자주 보게 될 것이다. 좋다. 부자들이 서민을 위해 잘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라면 값 100원 인상문제를 왜 35만원짜리 비눗갑을 쓰는 이들이 해결해야 한다는 건지. 왜 가난한 이들은 자기의 슬픔과 분노와 고통과 꿈을 부자들에게 의탁해 풀려고 하는지. 왜 대표하는 자와 대표되는 자는 이렇게 어긋나고야 마는지. 이 부조화, 어긋남이 목엣가시처럼 불편하다.(정치·국제에디터)
| 1월3일에 주간지를 두개 사읽었다. '한겨레21'과 '시사IN'인데, 좀 치우쳤다고 생각했지만 건전하다고 생각할만한 주간지는 이 외에 잘 모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주간지는 보통 삼천원. 시사적인 마인드를 좀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블로그들을 뒤적거리다 보면 볼것보다 안볼것을 많이 보게되어서 시간도 날아가고 그다지 남는 것도 없어서 역시 돈주고 사봐야겠단 생각을 했다. 개인비서가 있다면 인터넷에서도 볼만한 것들 추려주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주간지는 일주일에 한번 나온단 점에서 신문보단 현시성이 떨어지지만 신문은 한번 보려면 두시간은 족히 걸리기 때문에 매일 볼 수가 없다. 일주일 정도면 그래도 괜찮은 편 아닌가? 휴가복귀하는 이다운 http://ddawoori.com 에게 시사IN을 사오래서 이번주 것도 구했다. 우석훈 교수의 칼럼이 실려있다. 밑줄은 나의 것. |
| ‘명박스’의 ‘그렘린식’ 개발 증후군 | ||
| 이명박 당선자 측은 한반도 대운하를 비판하면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개발을 위한 개발’을 추진하는 그들에게 논리나 상식이 먹힐 틈은 애초부터 없어 보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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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영화로 치면 꽤 재미있는 캐릭터이다. 악인이 승리하는 영화에는 어디에나 응용 가능한데, 내가 찾아낸 가장 흥미로운 응용편은 물에 닿으면 꽤 짓궂은 분신들이 몸에서 튀어나와 금방 세상을 덮어버리는 <그렘린>이다. ‘기즈모’라 불리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중국의 장난꾸러기 생명체가 그렘린으로 불어나면, 세상살이가 약간 피곤해진다.
이 당선자의 분신들-‘명박스’라고 부르도록 하자-도 대선 후 한 달 만에 엄청 늘어났다. <그렘린 2>에서, 잠자던 기즈모를 세상에 끌어낸 것은 뉴욕의 뉴타운 개발에 따른 중국인 고물상 불법 철거 사건이었다. 우리도 그렇다. 서울시의 뉴타운 개발 이후, 잠자던 명박스가 분열을 시작했다. 영화에서 그렘린의 분열은 가수반응처럼 물에 닿으면 생기는데, 현실의 명박스도 물을 좋아한다. 좋아해도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문제다.
대운하 이야기를 해보자. 서울과 부산 사이의 물류를 꼭 ‘물’로 보내고 싶다면, 그냥 인천항에서 부산항, 그렇게 보내면 된다. 그게 임진왜란 때 혹시라도 왜군의 매복이 있을까봐 떨면서 넘었다는 조령에 터널을 뚫고 통과하는 것보다는 빠르다는 게 상식이다. 육지로 바로 가면 시간이 덜 걸릴까? 거칠 것이 없는 바다 편이 빠르다. 그랬더니, 세상에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새로운 기술로 ‘기똥찬’ 배를 띄운단다. 아니, 그렇다면 그 배를 바다로 보내면 되잖아! 우리는 삼면이 바다인 나라다.
‘명박스의 심통’은 경제학으로 해석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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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4년 제작된 영화 <그렘린> 포스터. | ||
나는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한 화주의 화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 수송해주는 제도) 운송 방식이 21세기 물류가 될 것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50시간 가깝게 배 타고 유람하듯이 살살 가도 경쟁력이 생긴다는 생떼는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뭐라고 좀 했더니,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한다. 그렘린에 대처하는 인간의 지혜로 생각해보자. 이건 ‘개발을 위한 개발’이라고 하는 게 맞지 않나? 그냥 콘크리트로 강바닥을 바르고, 터미널도 만들고 싶고, 그렇게 건설사에 건설 물동량을 주고 싶다는 게 솔직한 마음 아닌가? 차라리, 4박5일짜리 ‘크루즈’ 물놀이를 하고 싶었던 게 원래 발상이라고 말하고, 순수 관광 목적의 ‘개발을 위한 개발’ 사업이었다고 실토하면 인간답기라도 하다. 하지만 ‘그렘린 같은 명박스’에게 어찌 인간의 지혜를 구하랴!
어차피 노무현 정부가 삽질하느라 새로 손본 광양항, 평택항 요즘 다 텅텅 빈다. 배가 그렇게 좋으면 배는 노는 항구로 보내고, 내륙 물류는 철도 복선화해서 항구로 보내면 5시간 안에 간다. 그러면 건설업자는? 강변 지역을 자연형 하천으로 생태 복원하고, 당신들이 강조하는 토사를 판 돈으로 읍면 지역에 7층짜리 멋진 도서관 하나씩 지어주시고, 거기다 3층짜리 근사한 복합 문화보전센터 하나씩 올려주시라. 물류와 문화, 그리고 생태까지 다 해결하는 이런 방법이 있는데, 명박스식 ‘개발을 위한 개발’, 그렇게 하면 지방 토호와 부재 지주만 떼돈 번다. 이제 그만 좀 하자.
※ 외부 필자의 기고는 <시사IN>의 편집 방침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yes24 아름다운 서재
이번 주 월요일부터 '검문조장'이란걸 하게 되었기 때문에 일과가 퍽 단순해졌습니다. 말하자면 기상 -> 검문소 -> 식사교대 후 검문소 -> 식사 교대 후 취침 or 다시 검문소. 대략 이정도 패턴입니다. 하루에 10시간에서 15시간을 검문소에 있게 되었네요. 나머지는 취침아니면 식사. 그나마 이번주에 훈련이 겹쳐서 10시간 서는 날도 잘 못쉬었네요.
오늘은 그 10시간 근무선 날이기 때문에 오랜만의 휴식에 감개무량해 하면서 책구경좀 하려고 yes24에 접속했습니다.
'아름다운 서재'란 코너가 있네요
http://www.yes24.com/corner/Book/beautifullibrary/BeautifulLibrary.aspx
각계각층의 저명인사들이 책을 소개하는 코너인데요.
요즘 읽고 있는 책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의 저자인 김연수씨가 맨 처음 나와서 새삼 반갑게 느껴집니다. 창비나 여기저기 다른 작가들이 훌륭하다고 칭찬해마지않는 김연수씨가 여기서도 맨 처음에 보이네요.
책이 있고, 그 책을 읽을 시간만 난다면, 우리도 꽤 멋진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서로 서로 읽은 책을 비교해보세요.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은, 게다가 그 책을 둘 다 너무나 좋아한다면 두 사람은 삶을 함께 공유한 것이나 마찬가지랍니다. 더 많은 책을 읽을 때,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과 삶을 공유할 수 있어요. 멋지잖아요.라는 말로 서두를 꺼내면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저/안정효 역 | 문학사상사
슬라보예 지젝 저 | 인간사랑
이상 저 / 김종년 편 | 가람기획
폴 오스터 저 / 황보석 역 | 열린책들
같은 책들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일주일 정도 전에 <달의 궁전>을 읽었는데
또 추천을 해주시니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백년 동안의 고독>은 등장인물 이름 익히는게 너무 벅차서 포기했었고요;
황석영씨는 최근작들 위주로 선정하셨는데요,
본인의 최근작 <바리데기>를 꼽으시면서 책홍보를 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명박, 강금실, 권영길 등 정치인들도 많이 보이고...
정치인들은 역시 각자 성향에 맞는 책들을 고르는 것 같습니다.
이명박씨는
스펜서 존슨 | 중앙M&B
잭 웰치 | 청림출판
같은 책들을 고르네요.
책이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요.
추천한 책들 을 보면 성향이 엿보이는 듯 합니다.
마광수 교수님도 보이네요.
본인의 작품에 대단한 애정을 보이시는 분인데요.
역시나 본인의 작품들 십수권으로 추천란을 채워주셨습니다.
그래도
쑥스럽지만 저의 책들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상상력에 도움을 주리라 믿습니다.
라고 하시니 솔직하신 편이네요.
고승덕씨는 여러권 소개하는 척 하다가
결국 마지막에 본인의 책
고승덕 | 개미들출판사
을 넣는 소심함을 보이기도 하고,
권영길씨는 민노당 대표답게
KBS일요스페셜팀 취재/정혜원 저 | 거름소개멘트도 적극적이시고.
요즘 '유한킴벌리 모형'이라 일컫는 유한킴벌리사의 노동 정책에 관한 책이다. 이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휴식과 여가 그리고 교육시간을 배정하고서도 오히려 더 높은 생산성 향상을 가져왔다. 이런 맥락에서 uk모형은 사회적으로는 일자리를 늘리고 노동자에겐 더많은 여가를 주며 회사에는 생산성 향상을 가져다 주는 1석 3조의 한국형 경제 발전 모델로 검토될 만한 가치가 크다.
소개하는 책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굳이 그 사람이 하는 말, 쓴 글을 읽지 않고도 사람을 접하는 방법.
그 사람이 읽는 책을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서두에서 소개한 김연수님의 말처럼,
'더 많은 책을 읽을 때,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과 삶을 공유할 수 있을 것'
책으로 통하는 사람이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