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08/09/13 수용소군도 - 솔제니친
  2. 2008/09/06 코카콜라 게이트 (1)
  3. 2008/06/14 한국경제 대안시리즈...?
  4. 2008/04/28 밖에서 본 한국史 VS 한단고기
  5. 2008/04/15 피파의 은밀한 거래 - 앤드류 제닝스
  6. 2008/04/13 서평이란 (1)
  7. 2008/04/01 승자독식사회 (3)
  8. 2007/12/08 책 잘 읽어놓고 짜증내기 (1)
  9. 2007/10/27 마지막 희망은 탈출? (4)
  10. 2007/10/27 은하영웅전설 - 다나카 요시키 (3)

수용소군도 - 솔제니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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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접했던 솔제니친의 글은 고등학교 문학교과서에 짤막하게 실려있던 '이반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였다. 당시에 재밌을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입시준비에 찌들어서 책을 구해서 읽어볼 생각은 하지 못하다가 몇 년이 지난 후에 군대를 다녀와서 정말 감탄, 공감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뒤에 또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 한 달 전쯤 NPR이라는 미국 라디오 방송을 듣다가 우연히 솔제니친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듣고 검색해보다가 솔제니친의 대표작이라길래 읽게 된 책이다. 국내에는 88년에서야 전권이 번역되어 나왔고 가장 최신판은 95년 에 나왔다. 오래된 책이라 책값도 저렴(6000원)해서 바로 전권을 살까 생각했는데 절판된 책이라 구하기가 힘들었다. 출판사 홈페이지에 가보니 수요가 별로 없기 때문에 재출간 계획도 없다고 한다. 다행히도(?) 아직 학생이라 학교 도서관에서 쉽게 빌려서 읽어 볼 수 있었다. - 사실 아직 6권 중에서 1권 밖에 읽지 못했다.

  1권에서는 주로 수용소의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끌려들어오게 되었는지를 묘사하고 있다. 러시아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완벽하게 소화하긴 힘들었지만, 그 당시의 수용소라는 것은 죄수를 사회와 격리시킨다는 의미보다는 노동력의 확보를 위해서 세워진게 아닌가 한다. 의심많고 적도 많은 스탈린이라고 하지만 단지 정치적 권력장악만을 위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수용소로 보낸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일이다. 그토록 위대하다는 혁명을 통해서 이루어낸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하려면 그럴싸한 성과를 보여주어야했고, 그러자면 공짜로 부릴 수 있는 노동력이 많이 필요했을 것이다.

  죄가 있건 없건, 일단 잡아들인 후 고문으로 없는 죄도 만들어낸 다음 수용소에서 10년, 20년씩 강제노동을 시키는 것이다. 잡혀들어오는 유형이나 과정, 당시의 법률에 대해서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읽다보면 지금으로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는 잘못된 부대운용으로 인해 포위되어 포로로 붙잡혔다 탈출해온 병사들까지도 적의 스파이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으로 모조리 다 수용소로 보낼 정도였던 것이다.

  1권을 읽다보면 수용소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과정 - 친구와의 편지에서 스탈린을 비판하다 체포되어 형이 확정 될 때까지 이곳저곳의 감옥을 옮겨다니던 이야기 - 을 아주 상세하게 서술하는 부분에서는 '이반데이소비치 - 수용소의 하루'처럼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되는지, 얼마나 작은 부분에까지 집착하게 되는지 잘보여주면서도 당시 소련 사회의 전체적인 모습도 놓치지 않고 조망해주고 있다. 공산주의자였다는 솔제니친이지만 당시의 체제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긴 어떤 사람이라도 그런 체제가 정상적이라고 옹호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런면에서 당시에 소련의 영향을 많이 받은 우리나라의 공산주의자들은 과연 이런 상황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그들의 지령을 받아들였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나머지 2-6권도 부지런히 읽고 계속해서 써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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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 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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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 게이트, 윌리엄 레이몽, 이희정 역,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Coca-Cola  - La investigacion prohibida/ The Forbidden Investigation



원제에서 보이듯이 이 책은 금지된 조사를 하고 있다. 저자인 윌리엄 레이몽은 프랑스인으로, 코카콜라 매니아였다. 그는 코카콜라 관련 자료들을 모아나가다가 코카콜라사에 생긴 의문점을 파헤쳐나가게 된다. 저자는 책을 쓰기 위해 코카콜라사에 자료를 요청했다. 코카콜라의 대답은 책을 보여주지 않으면 자료를 줄 수 없다는 것. 다시말해 어떤 내용인지 검열되지 않은 책을 위한 자료는 없다는 뜻이었다. 코카콜라의 기적에 가까운 경영과 그 신비한 맛을 찬양하는 책이어야만 코카콜라사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받을 수 있다.

결국 저자는 스스로 자료를 구하여 코카콜라의 각종 비리를 파헤친다. 맨 처음 코카콜라를 만들어낸 약제사 팸버튼과의 계약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팸버튼으로부터 직접 제조법을 전수받은 디바 브라운과의 재판, 경쟁사인 펩시콜라를 누르기위해 동원한 갖가지 수단과 편법, 그리고 정권과의 유착, 2차 세계대전중에서도 독일군에 코카콜라를 팔기 위한 나치와의 관계등 저자 개인이 밝혀냈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많은 비리들을 폭로한다. 달리 보자면 개인적인 조사로도 밝혀질만큼 많은 비리를 코카콜라가 숨기려고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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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는 미국화의 상징이다. 코카콜라는 UN 가입국보다 많은 나라에서 팔리고 있으며 가장 미국적인 브랜드, 세계에서 가장 브랜드 가치가 뛰어난 브랜드. 미국인의 생필품이면서 물보다 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음료이기도 하다. 전 세계를 지배한 그들의 경영성과는 경이적이지만 그 이면에는 검은 콜라로도 가려지지 않을 만큼 더 짙은 검은 비리가 있다. 코카콜라가 미국화(세계화)의 상징이란 것은 미국인이 말하는, 그리고 우리 정부가 말하는 세계화와 코카콜라의 경영철학이 상통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코카콜라가 세계시장을 장악하는 와중에 사라진 그 많은 음료회사들처럼 세계화는 그 자유무역의 깃발을 꽂으면서 그와 같은 수만큼의 다른 깃발들을 불태우고 있다.

그 코카콜라를 마신다는 것, 코카콜라의 경영철학과 세계시장을 지배한 경영자의 '유능함'에 대한 환상에 빠져있는 동안 우리는 하나하나 세계화의 깃발을 환영하며 시장을 개방하고 무릎을 꿇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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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대안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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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블로그는 거의 방치상태고, 읽은 책도 최근 것이 없다.
책을 안사게 된 것과 거의 동시에 블로그 포스팅과 독서가 정지되었다. 알라딘에도 거의 안들어가고 있다.
블로그를 너무 버려두는 느낌도 들고 책도 좀 읽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서 일단 예전에 읽었던 글로 포스팅을 하려다가 알라딘에 접속했더니...

한국경제 대안시리즈의 3권이라는 책이 나와 있었다.


저자는 역시 우석훈 선생님이고.
책 소개랑 리뷰가 길게 되어 있었다. 알라딘에서 좋아하는 저자인 모양이다.
88만원 세대가 나왔을 때도 이주의 마이리뷰, TTB리뷰 등에 88만원 세대를 읽고 쓴 서평이 많이 선정되었었고..
특정 저자, 특정 주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구나 싶다.

88만원 세대 포스팅에도 쓰여 있지만 경제 대안시리즈는 시리즈 이름부터 잘못되었다.
경제 대안 시리즈라고 하는데 대안은 책에 없다.
있다고 해도 그게 책의 주된 소재가 아닌데다 좀 우스울 정도로 비현실적이다.

물론 이런 책이 나와서 많은 화제가 되고 그래서 여러사람들이 읽는 건 좋지만
좀 더 정교하게 쓴다면, 그래서 더 질적으로 탄탄한 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88만원 세대가 나온지 1년도 안되어서 또 책이 나왔다는 게,
학문적인 내용이 들어가야 할 법한 책을
10개월정도에 뚝딱 써낼 수 있다는게 놀라운 일이지만 독자의 입장에선 좀 불만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석훈씨는 88만원세대가 뜨고난 후에 많이 바빠졌고, 교수니까 강의도 할테고,
시사IN에 칼럼도 쓰고 있었는데 어떻게 책도 썼을까..

촌놈들의 제국주의, 읽고는 싶지만 기대되지 않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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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본 한국史 VS 한단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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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주의의 지나친 발현이 아닐까?' - 한단고기

  극단적으로 다른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서술한 두 책이다. 먼저 접했던 책은 『한단고기』. 군대에 있던 시절, 가끔 부대에서 외부강사를 초청해 여러가지 강의(?)를 듣곤 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이 책의 관점에서 역사를 연구하는 모임의 회원이었다. 당시에 좀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들긴했는데, 호기심에서 전역후에 사서 읽어봤었다.

  핵심적인 주장은 우리민족이 세웠던 국가의 역사가 1만년은 되었고, 그 활동범위도 만주정도가 아니라 몽골지역에 이를 정도였다는 것이다.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이토록 찬란한 역사를 가진 민족이 지금은 손바닥만한 반도 구석에 찌그러져 있는 상황에 못마땅해하는 인식이 느껴진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다.

  북쪽에 앞선 기술을 가진 민족이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기술을 전파하고 국가를 건설하면서 지배층을 이루었다 정도가 좀더 일반적인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고구려나 백제의 건국신화를 보면 이런 과정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신라는? 뜬금없이 알에서 사람이 나와서 왕이 되었다고 한다. 알이 외부인을 상징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후의 신라발전과정을 보자면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서 현격히 느리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지역에 살고있던 독자적인 세력이라고 보는게 합당하지 않을까?

'내가 원하던 시각에서 국사를 서술해준 책' - 밖에서 본 한국사

  『밖에서 본 한국史』는  흔히 삼국통일이라고 부르는 과정에 대해서 신라의 팽창이라는 색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나는 이게 좀더 현실적인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신라는 고구려의 영토나 유민 어느 쪽도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다. 이것을 두고 3국 통일이라고 부르면서 뒤이어 일어난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발해마저 우리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까? 같은 민족이라면서 의사소통도 자유롭지 않았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국사라는 틀은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기에는 시야를 제한하는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것 같다. 현대사에는 일본, 미국, 러시아 같은 외부 세력을 빼고는 이야기를 할 수 없어서인지 세계화라는 넓은 시각에서의 해석이 강조된다. 그런데 고대나 중세 시기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는 지나치게 우리의 입장에서만 이야기하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듯하다. 이 책은 그런 한계를 벗어나서 외부의 상황과 우리 역사를 연계해 서술하고 있다.

  이책은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일일이 사료의 출처를 밝혀가며 엄격하게 쓰여진 책은 아니다. 어떤 면으로는 저자의 상상이나 추측에 너무 의존해서 쓴게 아닌가하는 부분도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우리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주는 이 책의 가치를 가리지는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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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파의 은밀한 거래 - 앤드류 제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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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처럼 책을 선택한 동기. 이 곳은 팀블로거로서 읽었던 책에 대해서 포스팅을 하는 곳이고, 축구에 관한 블로그를 하나 더 운영하고 있다. 뭐든지 쓸려면 많이 읽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축구에 관해서 포스팅을 할만한 주제가 없을까하고 축구를 검색어로 해서 최근작으로 골랐던 책인데, 읽고보니 무거운 내용이라 이 곳을 선택했다.

  저자 소개. 앤드류 제닝스는 영국출신으로 조사전문기자다. 그의 저작 목록을 살펴보면 최근에는 IOC와 FIFA 같은 국제 스포츠기구에서 벌어지는 비리에 집중하고 있는 듯하다.

  부패나 비리라면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피파같은 스포츠 기구는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분야인데, 오히려 그런 점이 부정과 사기에 훨씬 적합한 듯 하다. 별로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없고, 잘못에 대해서 처벌할 사법기관도 분명하지 않다.

  책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피파는 투명성에 관해서는 최악의 기구이고 기업이나 국가였다면 벌써 망해버렸을 그런 조직이다. 회장은 보수 자체가 공개되지 않은데다 사적인 용도로 쓰인 돈이나 세금 모두 피파가 결제하도록 하고 있다. 거기에 엄청난 액수의 돈을 뇌물로 받고 있고, 선거 운동도 피파의 자금을 사용하고 있으며 선거때만 되면 반대로 투표권을 가진 회원들에게 뇌물을 주면서 회장직을 유지한다. 임기에 대한 제한도 없으니 그런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는 것이다.

  책은 현회장인 아벨란제 시대에서 시작해 블래터를 주로 다루고 있다. 두 명뿐이긴 하지만 워낙 긴 시간이고, 국제기구이다보니 등장인물의 수도 엄청나서 집중해서 읽기 어려운 면이있다. 게다가 시간과 장소까지 넘나들면서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한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다.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은 지루한 감도 있고 구성자체가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별을 4개나 준 이유는 주제가 신선했기 때문. 피파같은 국제기구는 당연히 깨끗할거라는 나의 고정관념을 깨준 책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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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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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블로그(블로그코리아 책 분야랭킹 7위다 무려)를 운영하면서 가장 많이 다루어야 할 것은 책에 관한 글, 서평이다. 책에 관한 글을 쓰지 그럼 사진을 찍느냐..라고 농담삼아 반문해보기도 하지만, 그렇게 당연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정작 서평에 관한 스스로 주관을 세우지 못하고 있음을 부끄러워하게 된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에서 다음 글을 옮기며
다음에는 서평에 관한 주제로 직접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마는, 이 글을 포스팅했다는 것은 아마 쓰지 않게 될 것이란 뜻이다.


교수신문(08. 01. 29) '소개’와 ‘비평’ 사이에 놓인 판관의 칼

바늘 가는 데 실 간다고 책이 있는 곳에 서평이 따라붙는 것은 자연스럽다. 서평은 말 그대로 책의 됨됨이에 대한 평이니까 책이란 물건이 존재하는 이상 서평은 불가피하다. 책에 대한 평이라고 했지만 이때 評은 좋고 나쁨 따위를 평가하는 말이다.그럼으로써 값을 매기는 일이다. 책도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것이니까 풀어서 말하자면 한 책에 대해 품평한다는 것은 그것이 어원적 의미 그대로 ‘꼴값’을 하고 있는지를 판별하는 것이다. 그러한 판별을 위해서 보통은 책을 한 번 읽고 마는 게 아니라 한 번 더 읽어야 한다. 적어도 넘겨보기라도 해야 한다. 그래서 리뷰(re-view)다.

이 ‘리뷰’란 말 자체에 ‘비평’이란 뜻도 포함돼 있지만 나는 서평의 존재론적 위치는 책에 대한 ‘소개’와 ‘비평’ 사이가 아닌가 싶다. ‘소개’의 대표적인 유형은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보도자료’와 언론의 ‘신간소개’일 것이다. 그것은 주로 어떤 책의 ‘존재’에 대해서 말한다. 그래서 “어, 이런 책이 나왔네!”란 반응을 유도한다. 반면에 ‘서평’은 그것이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인가를 식별해줌으로써 아직 책을 접하지 못한 독자들의 선택에 도움을 준다. 그것은 일종의 길잡이다. “이건 읽어봐야겠군.”이라거나 “이건 안 읽어도 되겠어.”가 서평이 염두에 두는 반응이다. 그에 대해 ‘비평’은 책을 이미 읽은 독자들을 향하여 한 번 더 읽으라고 독려한다. 그것은 독자가 놓치거나 넘겨짚은 대목들을 짚어줌으로써 “내가 이 책 읽은 거 맞아?”라는 자성을 촉구한다.

물론 소개-서평-비평은 일종의 스펙트럼을 형성하는 것이어서 경계를 확정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책에 관한 담화와 담론들은 이 세 요소들을 약간씩이라도 모두 포함하기 마련이다. 다만 분류는 그 비율과 방점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다. 서평의 존재론적 위치가 그렇게 가늠될 수 있다면 서평의 바람직한 역할이란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적어도 일반론적인 차원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보다 세분해서 서평의 유형학을 가정할 경우에는 초점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서평의 유형은 다양한 기준에 따라 나뉠 수 있는데, 먼저 그 서평의 주체에 따라서 일반독자, 전문독자, 전문가 서평으로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일반독자란 자신의 관심과 흥미에 따라 책을 사서 읽게 되는 보통의 독자를 가리키며, 전문독자는 주로 출판평론가나 도서평론가란 직함을 달고 여러 매체에 정기적으로 북리뷰나 칼럼을 게재하는 이들이나 언론의 출판면 담당기자들이 지목될 수 있다. 그리고 전문가란 서평을 정기적으로 담당하지는 않지만 해당 분야의 전공자로서 식견과 조예를 갖고 있는 이들을 말한다. 물론 이러한 독자 유형 또한 중복 가능하다. 한 사람이 모든 분야의 전문가인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서평의 주체가 이렇게 구분될 수 있다면 바람직한 것은 이들이 유기적인 분업체계를 구축하는 것이겠다.

 번째로, 서평의 또 다른 분류기준은 분량이다. 원고지 매수로 따지자면 5매, 10매, 20매,  30매 등의 유형학이 가능하다. 분량의 제한이 없는 자유서평이 아닌 이상 대개의 ‘공식적인’ 서평들은 분량의 제한을 요구받으며 이러한 분량 자체가 서평의 내용을 상당 부분 한정한다. 어느 정도로 자세하게 평하느냐는 전적으로 이 분량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물론 서평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비평만큼은 아니더라도 보다 많은 분량이 확보될 필요가 있다. 주요한 학술서나 교양서를 평하면서 원고지 10매 분량도 할애하지 않는 것은 ‘서평 문화’ 자체의 피상성을 양산할 따름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서평을 다루는 매체 또한 서평의 분류기준이다. 이것은 서평의 주체와도 얼추 상응하는데, 주로 일반독자들의 서평이 올라오는 온라인서점이나 개인 블로그, 그리고 전문독자들의 리뷰들이 게재되는 일간지, 주간지 등의 언론매체, 끝으로 전공자들의 학술서평이 실리는 학술지 등이 서평의 유형학을 구성한다.
여기서도 물론 바람직한 것은 각 매체별 서평들의 역할 분담이고 특화이다. 매체에 따라서 요구되는 서평의 성격과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네 번째로 거론할 수 있는 것이 그 성격과 내용에 따른 분류이다. 서평은 대상도서의 학술적, 사회적 의의를 거론할 수도 있고, 도서 상태의 문제점과 오류들에 대한 지적으로 채워질 수도 있다.
그것은 곧 책에 대한 권유/만류와도 맞물리는데, ‘반드시 읽어보시길’ 권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간낭비하지 마시길’이라고 충고를 던질 수도 있다. 물론 그 두 가지 양 극단 사이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며 독자의 관점에서 볼 때 바람직한 서평이란 그러한 권유/충고가 요긴하게 사용되는 것이다.

몇 가지 기준에 따라 나열한 대로 우리의 ‘서평 문화’는 다양한 층위의 서평들로 구성되며 따라서 일률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사회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언론 서평의 경우에 신간들 위주의 표면적인 소개보다는 일정 분량 이상이 전제된 깊이 있는 리뷰들이 보다 많이 다뤄지기를 기대해볼 수는 있겠다. 이런 정도의 소감밖에 피력할 수 없는 것은 ‘주요 서평자’로 거명됐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로 해온 일이 본격적인 서평이라기보다는 주변적인 서평 혹은 책에 대한 수다 정도이기 때문이다.

(중략)

물론 지면의 성격과 분량의 제약이 서평의 일차적인 한계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읽을 만한 책을 판별해내고 엉터리 책들을 감시하는 서평의 고유한 자기 역할을 망각하지 않는 것이다. 서평을 통한 학문적 교류에 이르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 


ps. 학문적 교류까지는 내 알바 아니고.. 서평의 역할에 신경쓸 정도도 아닌 것 같다. 난 그저 읽고 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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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독식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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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독식사회> 로버트 프랭크, 웅진지식하우스 2008



며칠 전에 이 책을 읽고 있다는 포스팅을 했는데, 꽤 빠른 시간에 평을 쓰게 되었다. 실은 중간에 제목만 읽었어도 충분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제법 있었지만, 읽어나가던 와중에 리뷰를 쓸 것을 염두에 두면서 읽어나가니 몇자 적고 싶은 것이 생각났다.

원저 The winner-take-all society 는 1995년에 나온 책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예로 든 것들이 현시성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수준이다. 스포츠 스타들로 패트릭 유잉, 앙드레 아가시 같은 선수들이 나오는 정도고 Microsoft와 인텔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시장독식을 말하면서 MS-DOS를 예로 들고 있는 부분에선 심히 한숨이 나왔다. 그럼에도, 2008년의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그 승자독식사회화가 더욱 급격히 진행되었다는 것은 주지해야 할 사실이다. 이 책을 13년이나 지난 이제서 번역한 역자나 펴낸 출판사에서도 염두에 둔 부분일 것이다.

승자독식시장은 소수, 1%의 승자들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시장을 말한다. 최고의 가수들 몇몇만 있어도 그들의 음원을 하나 더 생산하는 것은 그다지 큰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에 비해 근소한 차이로 열세를 보이는 가수들에게 투자할 투자자는 없어진다. 때문에 승자들은 천문학적인 액수를 챙기고, 패자는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연명해야 하는 것이다.

불행한 것은 승자가 얻어가는 것이 많아질수록, 다수의 패자들은 그 꿈을 더욱 키워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수천만 달러를 버는 메이저리거들을 보며 야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나가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얼마나 그 꿈에 근접할 수 있는지 냉정하게 파악할 수 없다. 패배할 것을 염두에 두고 세상을 사는 것은 젊은이가 가지기에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이너리거가 되고 몇년이 지나서야, 천만불을 벌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때 그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은 많지 않다.

물론 패자들이 갖는 것은 적은 돈일지라도, 그들은 야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많은 수의 그들은 '좋아하는 야구를 하면서 어렵게 살기'와 '조금 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더 잘 살 수 있는 일' 사이에서 선택할 기회를 어린 시절에 박탈당한다. 그것은 그들이 선택한 것도 아니고, 사회에서 강요한 것도 아니지만(어쩌면 무수한 스포트라이트들이 강요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그다지 생산적이지 못한 야구를 하는 탓에 사회가 잃어버리는 기회비용은 매우 크다. 천명이 육상선수를 하나, 열명이 육상선수를 하나 100m 금메달리스트는 한명 뿐이다. 그리고 990명이 다른 일을 할 때 그들과 우리 사회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는 아니다.

경쟁이 더 나은 상품을 만드는 것은 진리에 가까운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경쟁이 상품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은 어느 정도에서 한계에 맞는다. 그러나 경쟁이 과열될수록 승자가 가지는 메리트는 커지고 더 많은 사람은 패자가 되고 만다. 개인이 승자독식시장에 뛰어드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도, 빠져든 개인을 구할 수 있는 수단도 이 사회는 가지고 있지 않다.

저자가 많이 드는 예가 스포츠산업이지만, 스포츠 외에도 승자독식시장은 곳곳에 있다. 언젠가 베스트셀러가 될지도 모르는 책을 쓰는 작가들, <뉴욕 타임즈>에 매주 실리는 15편의 서평에 속하지 않는다면 베스트셀러가 되기는 힘들다. 그들에게 작품 외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은 그 시장이 온몸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학벌시장. 수능점수 몇점 차이로 대한민국 1%계층이 결정된다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에서도 승자독식시장은 만성적이다. 저자가 설명하는 미국의 아이비리그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수한 학생을 선발한 대학은 더 우수한 교수진을 모으고, 우수한 교수진은 더 우수한 학생들을 부른다. 내 이야기만 하더라도, 내가 부산대학교에 갔더라면, 전액장학금을 4년 내내 받았겠지만 나와 우리 부모님은 사립대학교 등록금에다가 서울 유학이라는 추가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사회가 승자독식사회임을 염두에 두지 않은 '합리적 경제인'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내 선택이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비웃을 사람은 이 사회에 많지 않다.

읽는 내내 나를 우울하게 만들던 저자는 책 말미에서 희망적인 메시지를 준다. 승자독식시장의 승자도 결국엔 그리 행복하지 못하게 된다는 말인데, 이런 걸 위로랍시고 하는 저자가 우습기도 했지만 이런 말밖에 할 수 없는 것이 그와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는 생각에 먹먹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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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잘 읽어놓고 짜증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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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퀴즈쇼>다.

작가가 말하듯이 이 책은 20대를 위한 책이다.
"단군 이래 가장 똑똑하고, 가장 코스모폴리탄적인, 80년대에 태어나 컬러 텔레비전/프로야구와 함께 자랐고 풍요의 90년대에 학교를 다닌" 20대.

우리 세대는 너무 얌전하고, 착해서
시대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생각하고 있다.
먹고 살기 힘든 것이 나의 문제고,
취직 안되는 것이 내 토플점수가 모자라서이고
더 좋은 대학을 다니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좀 억울하다,
더 억울해 하는 것이 당연하다.
너희는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라고 김영하는 말한다.

실은 좀 억울한 점도 없지않지만
그게 억울한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사립대 연 등록금 평균이 700만원에 달하는데
졸업하면 월 88만원에 목을 매어야 하는 현실을
어쩌면 그렇게 당연하게 받아들였는지

그런데도 대학만 가면 된다고 하던 아버지 세대만 믿고 자랐는데
대학에 가면 공부할게 더 많고
대학문보다 176배정도 좁은 취직문이 기다리고 있다는 건
어쩌면 그렇게도 몰랐던지

그런데도 '착한 20대'는
억울한 줄도 모르고
대학에서 모자라면 학원가려고
시급3000원대의 pc방, 편의점 아르바이트하고

'단군 이래 제일 책 안보는 세대'라고 욕먹고
경북대 200명 중에서 126명이 투표일을 모르고 살고 있다
너무 바빠서 고개를 돌릴 수가 없다.
너무 바빠서 오늘도 고등학생들은 아침도 못먹고 학교에 간다.


어쨌든 별로 좋은 평은 못받는 책인 것 같다.
구성도 엉성하고, 이것저것 짜맞춰서 뚝딱만든 소설 같다는 평.
1년만에 얼렁뚱땅 만들었다고 하던가.
조선일보 연재소설이라서 3류작가가 쓴 것 같다던가.

사실 여기도 좀 익숙한 캐릭터들이 많이 보이고,
비평가들이 좋아할 문장들, 굳이 만들어낸 부분이 많이 눈에 띄고
많이 본 듯한 설정, 억지 해석을 자아내는 부분들이 없잖지만

그건 당신이 20대가 아니기 때문에 보이는 것들이다.
20대라면, 최소한 재미있게는 볼 수 있다.

재미는 있겠지만, 답은 없다.
물론 김영하는 시대의 고민과 20대의 우울함을 잘 읽어냈다.
(이미 40대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겠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소설가가 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이런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는 건 그냥 팔겠다는 이야기다.
페이퍼백 주제에 만천원이나 받고.
연재료도 받았으면서.

책값 이야기를 해서 좀 새는 감이 있는데, 결국 그게 이 책의 본질이다.
답을 주지도 않을 거면서 어설프게 우리사회의 아픈점을 건드린다.
편의점 알바를 때려쳤다고 해서, 헌책방 알바를 한다고 해서
 민수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지원을 만난다고 해서 민수의 우울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회사에 들어가서 퀴즈대결로 돈을 받는 건
민수의 환상이자 작가의 환상일뿐,
작가가 원했던 독자타겟인 88만원 세대의 답은 거기서 나오는 게 아니고
우린 민수가 회사에 들어갈 때부터 짜증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결국 김영하는 결말을 짓지 못했다.

거기까지 생각하면 이제 이 소설은 차츰 불쾌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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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희망은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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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용




파피용 - 6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뫼비우스 그림/열린책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대중작가다. 누구는 이 사람은 정말 천재인 것 같다고 귀가 뭉게질 정도로 칭찬을 해대고 있지만 나에겐 그저 읽기 쉬운 책들 양산해내는 대중작가인 것 같다.

 과학분야에서 일했었다고 하던데 그 때문에 책들을 보면 과학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다른 작가에겐 쉽게 찾기 힘든 재능. 저자의 소설 <뇌>를 읽었을 때가 기억난다. 고등학교 때 친구 선물로 사주고는 흥미없어 하길래 빌려달래서 읽는 약간 약은 짓을 해가면서 읽었는데 그 친구가 하권을 안빌려줘서 못보고 말았던 기억. <다 빈치 코드>도 두권짜리 다 사려다가 일단 1권만 사서 읽었는데 뭔가 역겨움을 느끼고 그만둬 버렸다.
 
 쉽게 읽히는 건 문제가 아니다. 쉽게쉽게라도 읽는게 어딘가. 난 그렇게 고상한 척 하고 싶지는 않다 이제. 쉽게 보는 책 읽을 시간에 다른 책 볼 것도 아니고 내 옆에 책이 그렇게 쌓여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런 책을 볼 때 어느 정도 긴장을 늦추고 설렁설렁 넘기게 되는 건 사실이지만, 딱히 까대고 싶다거나 무시하고 싶다는 건 아니다. 그때, 황석영씨가 한 말을 들었다. '베르베른가 하는 작가는 프랑스에선 SF대중작가 정도로 평가되고 있다', '다 빈치 코드니 뭐니 해도 교양인은 모른 척 한다' 그에겐 소설이 직업이니만큼 뭔가 나같은 사람과 비할 수 없는 자부심 같은 것이 있을 테지.
 
 그렇지만 나에겐 개개의 메시지는 다 같은 무게다. 쉽게 읽히든 페이지당 3분이 걸리든 시간의 문제일 뿐, 개개에 메시지는 무게를 비교할 수 없다. 가볍다와 무겁다는 그네들의 문제일 뿐이지, <태백산맥>과 <69>은 나에게 동등하다. <태백산맥>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69>에서 무라카미 류가 말한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란 말을 평생 자기지침으로 삼는 사람도 있는 거다 . 가볍고 무거움을 따지는 태도는 책에게 미안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만 솔직히 나는 <파피용>에서 어떤 말을 하려고 한 지 얼른 이해되지 않았다. 영화로 만들법한 스토리, 영화와도 같은 전개.. 처음부터 영화화를 전제로 한 소설인가. <다 빈치 코드>에서 느낀 역겨움처럼? 그렇지만 이젠 그냥 보기로 했으니까 끝을 봤다.

 인류에게 던지는 어떤 메시지, 작가의 역사론 같은 것이 느껴졌다. 지구는 결국 한계가 있다는 비관론으로 시작했으나 ㅡ 마지막 희망은 탈출 이라는 말에서 결국 달아날 수 밖에 없다고 하는 줄 알았지만 ㅡ 인간은 그것을 이겨낸다. 어머니의 품을 박차고 나갈 에너지, 인간에겐 그것이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 역사의 반복과 거기에서 끝없이 발전을 모색하는 인간의 에너지에 대한 믿음. 저자는 그 말을 하고 싶었나 보다.

그래도 정말 '마지막 희망은 탈출' 밖에 없을까?
http://wnsgml.com2007-10-27T07:15:240.3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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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영웅전설 - 다나카 요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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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영웅전설 1은하영웅전설 1 - 10점
다나카 요시키 지음, 윤덕주 옮김/서울문화사
 오늘은 은하영웅전설이란 소설.

문장이 아름다운 그런 소설은 아니다. 중학생도 읽을만큼 쉽게쉽게 짧게짧게 쓴 문장들의 나열. 다나카 요시키는 청소년 대상 소설작가로도 유명하다나. 얼핏 흔한 판타지소설같은 문체와 분위기. 더불어 촌티날리기 그지없는 '등장인물 소개'에 할당된 세 페이지. 옛날 책이라 더욱 그런 느낌이 드는 걸. 91년쯤에 에 내가 읽은 몇몇 반공소설이 오버랩되어서 더 얄팍한, 그냥 읽고 던지면 좋을 것 같은 느낌. 이 책이 뭐가 아쉬워서 10만원주고도 못구한다고 난리들인가. 어쨌든 샀으면 읽어야지.

 얀 웬리라는 나약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나약하기 그지없다. 이상은 있지만 가야할 현실은 최악. 자기가 꿈꾸는 이상론, 역사론을 궁시렁 거리면서 결국 최악을 걷는다. 전략적인 전쟁 ㅡ 말하자면 이길 준비를 다 해둔 싸움, 이길 수 밖에 없게 만들어 둔 싸움 ㅡ 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으나 정치적 여건상 원하지 않는 싸움터에 끌려나가서 뒷수습하고, 지는 싸움 도중에 맡고 하는 전술적인 싸움만 하면서도 천재적 재능(본인은 정석에 충실 한 것이라고 하지만)으로 드라마틱한 승리를 이끌어내 연전연승. 삼십대 초반의 나이로 국가원수의 자리까지 오른다. 늘 싸우고 있으면서 틈만나면 은퇴하고 싶다고 궁시렁댄다. 이상이 없는 인간이 어딨을까마는 그래도 주인공이라면 으레 꿈속에서 살며 이상을 따르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것들이게 마련인데. 얀 웬리는 그러지가 못하다. 모든 시국을 꿰뚫는 통찰력과 대중적 인기, 마음만 먹을 수 있다면(결국 이것이 문제) 은하제국 황제도 부럽지 않을 권력을 누릴 수 있건만 늘 당하기만 한다. 권력이 무섭단 이유로. 알지만 할 수 없는 것.

 어딘가에서 본 글에 쁘띠부르주아인 자신과 얀 웬리를 비유한 글이 참 시의 적절하단 생각이 든다 ㅡ 은하영웅전설을 처음 접한 것도 그 글이다 ㅡ 알기 때문에 안하고는 못 배기는 척 달려드는 것(하지 않아야할 입장인줄도 모르고)과 해야한다는 것을 가슴이 아프도록 느끼면서도 자기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 간극을 절묘하게 비집고 들어가 이쁘게 재단한 글이었다. 그런 글을 쓸 능력이 있었으면 하다가 한숨을 쉬었더랬다.

 아무튼 얀 웬리는 그런 아픔을 가진 나약한 캐릭터다. 김훈의 <칼의 노래>에 나온 이순신도 따지면 그런 '얀 웬리적'캐릭터다. 노무현은 <칼의 노래>를 추천하면서 자기의 그런 캐릭터성을 은연중에 내비쳐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다. 칭찬하고 싶은 정치적 수완이다.
 
 묘점은 이런 캐릭터(얀 웬리만큼 쓸 캐릭터가 여럿 더 나온다)들과 정치극의 스케일, 그리고 이것들을 '우주력 790년대' 라는 SF적인 분위기에 녹여 우의적으로 현대인에게 우리네 정치의 아픈 면을 폭로하는 다나카 요시키의 독설과 필력이다. 더불어 화려한 전술들은 옵션이랄까. 결국엔 나폴레옹이나 클라우제비츠 등의 전술들을 베낀 것이라지만 작가는 얀 웬리 의 입을 빌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지극히 정석적인 전술'이라고 말하고 있는 만큼 베꼈단 말은 흠집내기에 지나지 않는다.


- 누군 은하영웅전설 서평좀 써달라고 청탁받아 하기싫어하기싫어하며 일처럼 쓴 글에서도 미친듯한 붉은 심장의 향기가 나는데 누군 좋아서, '쓰지않으면 배길 수 없어서' 쓴 글에도 향기는 커녕 싼티가 난다니 우울한 일이다.

http://wnsgml.com
2007-10-27T06:33:55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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