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05/02 화폐전쟁
  2. 2008/09/14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1)
  3. 2007/12/08 책 잘 읽어놓고 짜증내기 (1)
  4. 2007/10/31 남한산성에 자욱한 말言먼지 (3)

화폐전쟁


  오랜만에 읽은 경제 관련 서적이다. 한 동안 장하준과 스티글리츠의 무역에 관한 책을 집중적으로 봤었고, 금융쪽으로는 거의 처음 접하는 책이기도 하다. 경제사에 대한 책이라고 해도 좋겠다. 나폴레옹 시대부터 시작해서 금융 산업(혹은 금융 귀족)의 발달 과정을 추적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책이 다루고 있는 200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수십년 주기로 몇 번의 전쟁과 몇 번의 큰 공황을 거치면 금방 현대에 이르게 된다.

  책의 초반은 로스차일드 가문을 중심으로 국제금융집단의 형성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데 그 과정을 읽다보니 '허생전'이라는 우리나라의 고전소설이 떠올랐다. 그들은 간단하게 부자가 되고 국가는 무기력했다... 아무튼 세계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막강한 금융세력의 조종에 의해서 일어났다고하는 음모론적 관점에서 서술된 역사를 수백페이지 읽다보면 그 동안 내가 읽어왔던 역사책들의 분석과는 꽤 달라서 혼란스럽게 된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국제 기구들, 그중에서도 IMF와 세계은행의 사기수법(?)을 다루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 부분에서 저자는 스티글리츠를 언급하고 있는데, 내가 스티글리츠의 "세계화와 그 불만"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이 국제기구들은 애시당초 세계의 금융안전과 경제발전에는 관심이 없으며 몇몇 세력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말이다. 스티글리츠는 이 모든 과정에 그런 노골적 세력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으며 단지 그들 경제정책의 반복적 오류만을 지적했었다. 책을 읽는 내내 스티글리츠가 순진한건지 아니면 그런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아서 애써 무시하고 있는지 의문이었는데 화폐전쟁의 저자 쑹훙빙은 스티글리츠가 순진했다고 결론내렸다. (물론 저자의 표현은 좀더 온건하다.)

  중반부에는 미국 달러화의 비밀을 파헤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정부가 채권을 발행하고 FRB(미국의 중앙은행)가 그것을 사들이면서 발행하는 달러는 그 자체가 정부의 부채다. 정부는 미래의 세금으로 채권에 대해서 원금과 이자를 지불해야하기 때문이다. 성장하는 경제는 필연적으로 통화팽창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부는 계속 더 많은 채권을 발행해야되고 FRB는 점점 더 많은 이자 수익을 챙긴다. 이 과정의 핵심은 FRB가 민간소유라는 점이다. 이 은행가들은 페달을 밟지 않아도 자동으로 굴러가는 자전거에 올라탄 셈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책에서는 금융세력들이 미국에 이 시스템을 정착시키기 위해서 여러 명의 대통령을 암살까지도 불사했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이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통화량을 더 증가시키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한다. 통화발행량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1970년대 오일쇼크를 일으켜 세계의 달러화 수요를 높였다는 주장은 꽤나 설득력이 있어보인다. 여기서 지속적인 부채증가로 인한 금융위기를 예상했던 점이 이 책을 유명하게 만든 요소가 아닌가 한다. (위기의 진원지가된 핵심적인 기업들의 이름은 다 거론되고 있으며 거기다 예측이 맞아떨어지면서 앞에 나온 음모론에 설득력을 실어주고 있다.)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건전한 화폐로 '황금을 최종지불수단으로 화폐와 연동시키는' 금본위제로의 복귀를 주장하고 중국의 정책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위안화를 금에 연동시켜 안정적인 화폐로 만들면서 새로운 세계의 기축통화로 만들어 중국이 금융을 장악하고 강국이 되자는 주장이다. 안정적인 금보유량을 확보하게되면 금융투기 세력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는게 핵심이었던거 같다.
 
*순수 분량만 450페이지가 넘고 각종 금융수법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채 읽은 책에 대해서 짧은 시간에 리뷰를 하다보니 언제나처럼 미흡한 글이 되었다. 거기다 중간중간에 예전에 읽었던 책들 중에서 관련된 부분을 찾아보고 싶은 곳도 많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 세종대왕은 책 한권을 100번씩 읽었다는데 홍수처럼 쏟아지는 책들에 밀려서 몇 권의 책을 봤는지 '양'에만 욕심을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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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발자크는 문학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기능은 '흥미'라고 했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봐지는 혹은 들어지는 영화에 비해 문학은 여러 사고작용을 필요로 한다. 책을 끝까지 읽는다는 것은 영화나 연극을 끝까지 보는 것에 비해 대단히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다. 흥미를 끌지 못하는 문학이 소비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끝까지 읽히지 않는 문학은 심하게 말해서 가치가 없다.

나는 무라카미 류의 소설을 들 때 가볍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든다. 버스에서 읽거나, 공부하기 싫을 때 언제든 꺼낸다. 날 어렵게 만들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라기엔 몇권 보지 않았지만)

그런면에서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적잖이 껄끄러운 소설이었다. 매 장면장면마다 마약과 혼음의 환락세계가 펼쳐지고 주인공 류는 너무 구체적으로 떠올라서 읽기에 역겨울정도로 사진찍듯 상세한 묘사를 하고 있다. 덮어버릴까 하는 생각을 여러번 했지만 금방 읽겠다 싶어서 대강대강 넘기는 쪽을 택했는데, 뒷부분에서 눈길을 끄는 장면이 나왔다.

릴리, 나 돌아갈까? 돌아가고 싶어. 어딘지 모르지만 돌아가고 싶어. 분명히 난 미아가 되어버린 거야. 좀 더 시원한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나는 옛날에 그곳에 있었어.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릴리도 알고있지? 향기가 그윽하게 퍼지는 큰 나무 아래 같은 곳. 여기가 도대체 어디지? 여기가 어디야?
환각상태의 류는 이어지지 않는 막연한 문장들의 나열로 향수를 설명하고 있다. 알 수 없지만 막연하게 돌아가고 싶다. 여기가 어딘지 알수 없다. 그 시절이 어땠는지 기억하기보다 일단 지금을 벗어나고 싶다. 설명할 수 없지만 지금이 싫다고 류는 말하고 있다. 의미있는 문장일 듯 해서 서문을 다시 읽었다. 무라카미 류는 서문을 쓸때 중요한 부분을 친절하게 짚어주는 분이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70년대 중반의 일본 현실을 설명하고 있다.
30년전 내가 아무런 자각을 포함시키지 않고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상실감'이다. 1970년대 중반 일본은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뤄내고, 그 대신에 무엇인가를 잃었다. 이뤄낸 것, 그것은 일본 고유의 문화를 위한 것이 아니었고, 근대화 달성이라는 대(大)목표였다. 하지만 일본 민족은 목표를 잃었다.
일본 독자적인 문화와 근대화의 충돌에서 벌어지는 시대인 1970년대에서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은 불안감의 상징과도 같다. 매일 수도 없이 다양한 마약들을 접하고 아무라도 상관없다는 듯 관계를 갖고 그러다 문득 다투고 헤어진다.

류는 그 가운데에 있으면서 혼자 정지한듯 멈춰 장면장면들을 사진찍듯 묘사하며 독자의 구토증세를 유발한다. 지금이 좋은지 이대로가 옳은지 뭘 잊고 있는지 류는 자꾸만 물어본다. 그리고 '검은 새', 내 도시를 파괴한 '검은 새'에 대한 반감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릴리에게 새를 죽여달라고 한다. 방금전에 벌레를 눌러죽인 류는 검은 새를 두려워하며 도망가려고 한다. 작가는 검은 새 앞에 놓인 류를 통해 전후 일본을 말하고 있다.


마는, 솔직히 30년전 남의나라 일따위 별로 와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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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잘 읽어놓고 짜증내기



김영하의 <퀴즈쇼>다.

작가가 말하듯이 이 책은 20대를 위한 책이다.
"단군 이래 가장 똑똑하고, 가장 코스모폴리탄적인, 80년대에 태어나 컬러 텔레비전/프로야구와 함께 자랐고 풍요의 90년대에 학교를 다닌" 20대.

우리 세대는 너무 얌전하고, 착해서
시대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생각하고 있다.
먹고 살기 힘든 것이 나의 문제고,
취직 안되는 것이 내 토플점수가 모자라서이고
더 좋은 대학을 다니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좀 억울하다,
더 억울해 하는 것이 당연하다.
너희는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라고 김영하는 말한다.

실은 좀 억울한 점도 없지않지만
그게 억울한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사립대 연 등록금 평균이 700만원에 달하는데
졸업하면 월 88만원에 목을 매어야 하는 현실을
어쩌면 그렇게 당연하게 받아들였는지

그런데도 대학만 가면 된다고 하던 아버지 세대만 믿고 자랐는데
대학에 가면 공부할게 더 많고
대학문보다 176배정도 좁은 취직문이 기다리고 있다는 건
어쩌면 그렇게도 몰랐던지

그런데도 '착한 20대'는
억울한 줄도 모르고
대학에서 모자라면 학원가려고
시급3000원대의 pc방, 편의점 아르바이트하고

'단군 이래 제일 책 안보는 세대'라고 욕먹고
경북대 200명 중에서 126명이 투표일을 모르고 살고 있다
너무 바빠서 고개를 돌릴 수가 없다.
너무 바빠서 오늘도 고등학생들은 아침도 못먹고 학교에 간다.


어쨌든 별로 좋은 평은 못받는 책인 것 같다.
구성도 엉성하고, 이것저것 짜맞춰서 뚝딱만든 소설 같다는 평.
1년만에 얼렁뚱땅 만들었다고 하던가.
조선일보 연재소설이라서 3류작가가 쓴 것 같다던가.

사실 여기도 좀 익숙한 캐릭터들이 많이 보이고,
비평가들이 좋아할 문장들, 굳이 만들어낸 부분이 많이 눈에 띄고
많이 본 듯한 설정, 억지 해석을 자아내는 부분들이 없잖지만

그건 당신이 20대가 아니기 때문에 보이는 것들이다.
20대라면, 최소한 재미있게는 볼 수 있다.

재미는 있겠지만, 답은 없다.
물론 김영하는 시대의 고민과 20대의 우울함을 잘 읽어냈다.
(이미 40대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겠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소설가가 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이런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는 건 그냥 팔겠다는 이야기다.
페이퍼백 주제에 만천원이나 받고.
연재료도 받았으면서.

책값 이야기를 해서 좀 새는 감이 있는데, 결국 그게 이 책의 본질이다.
답을 주지도 않을 거면서 어설프게 우리사회의 아픈점을 건드린다.
편의점 알바를 때려쳤다고 해서, 헌책방 알바를 한다고 해서
 민수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지원을 만난다고 해서 민수의 우울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회사에 들어가서 퀴즈대결로 돈을 받는 건
민수의 환상이자 작가의 환상일뿐,
작가가 원했던 독자타겟인 88만원 세대의 답은 거기서 나오는 게 아니고
우린 민수가 회사에 들어갈 때부터 짜증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결국 김영하는 결말을 짓지 못했다.

거기까지 생각하면 이제 이 소설은 차츰 불쾌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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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에 자욱한 말言먼지








남한산성
- 8점
김훈 지음/학고재

 조선은 임진왜란에 즈음해서 무너질 나라였다. 그때에 즈음해서 임진란이 일어나 의병을 일으키고 양반은 도망가서 무너질 나라를 붙잡았다. 명은 아버지의 나라이자 임진란의 은인이 되어 조선의 위에 눌러앉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조선은 망하지 않았고 끝내 명을 섬기겠다고 하며 청을 불러들여 국토를 유린하게 했다. 이기지 못하겠으면 항복이라고 해야 할 것을 버티고 버티면 저들이 물러갈 것이라 하며, 이제라도 저들과 화친해야 한다고 하며 말言먼지를 드높였다. 청을 삼전도를 말馬먼지로 뒤덮었다. 임금은 추운 겨울 내내 남한산성에 있었다.


 조선은 말로 망한 나라다. 김훈은 그 말을 하려고 한다. 버틸 힘이 없어도 말이 교묘하고 에둘러서 피지배층을 어르고 달래며 버텨낸 나라다. 힘이 없으면서도 몸은 끝내 굴하지 않으려 하고 말은 바른 말을 하려 한다.
 
 최명길은 병졸들까지 자기더러 역적이라 하는데도 화친하자 하는가
 왜 왕이 항복문서를 쓰라는 데도 자결하고,
     분이 터져 죽고,
     엉뚱하게 안시성을 적은 글을 올리는가
 김상헌은 왜 버티려는가. 끝내 무너질 것을 붙잡으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다 말이 두려워서다.
처음 꺼낸 말을 스스로 덮는것이,
결국 청에게 졌을 때 싸우자 한 말이 화가 될까,
항복 문서를 썼다는 말이 두려워서,
끝까지 충성했다는 말을 듣지 못할게 두려워서다.

온 땅을 유린당해 남한산성에서 궁핍하면서도
용골대에게 신찬을 보내는 임금
명의 황제에게 문안인사를 올리는 임금
칸이 돌아간다는 말이 두려워 삼전도로 나온 임금

결국엔 살고싶다고 말한 임금.

말 때문에 적을 불러들이고
말 때문에 지지 못하고 버티다
결국 돌아간다는 말이 두려워 삼전도로 나간 임금은

칸에게 끝내 지고 말았다.


결국 이긴 것은 살아남은 서날쇠뿐이란 것.
말은 말일 뿐 말에게 매달리면 안된다는 것.

김훈은 나에게 그 말을 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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