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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미안과 이명박 (1)
  2. 2008/07/15
    부산역에서 부전역까지 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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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경제 대안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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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퍼할 줄 아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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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이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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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면값 걱정하는 부자들
  8. 2008/03/01
    도서관에 전문 사서가 없다 (2)
  9. 2008/03/01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5)
  10. 2008/02/05
    뉴발란스 이벤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는 재미있는 구절이 나온다. 재미있다 못해 약간 섬칫하기도 했던 구절인데, 처음 읽었을 때 멋진 문장이라고 생각했었던지 메모해둔 흔적을 오늘 발견했다.


다시 한 번 무엇인가 정말 근사한 생각 혹은 죄 많은 생각이 떠오르거든, 싱클레어, 누군가를 죽이거나 그 어떤 어마어마한 불결한 것을 저지르고 싶거든, 한 순간 생각하게. 그렇게 자네 속에서 상상의 날개를 펴는 것은 압락사스라는 것을! 자네가 죽이고 싶어하는 인간은 결코 아무 아무개 씨가 아닐세. 그 사람은 하나의 위장에 불과할 뿐이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 바로 우리들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그 무엇인가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지. 우리들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


읽자마자 전에 읽었던 칼럼이 생각났다.
김현진이란 분이 쓴 시사인(08. 06. 17) <우리 안의 이명박부터 몰아내자>라는 칼럼이다.
당시엔 연결시키지 못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김현진도 아마 데미안에서 영감을 얻은게 아닐까 싶다.

 
(전략)

그는 2008년의 대한민국에서 실로 운명적인 대통령이다. 온갖 불가사의한 어두운 그림자를 끌어안은 그에게 너끈히 대통령 자리를 넘겨준 것은 진짜로 경제를 살릴 줄 믿었던 국민도 아니고, 극렬 보수 지역 사람도 아니고, 그날 나 몰라라 투표 용지를 외면하고 놀러 가버린 사람도 아니다. 그에게 대통령 자리를 넘겨준 범인은 우리 안의 속물성이다. ‘내 아파트 값도 좀 확 뛰었으면’ ‘우리 아이는 자립형 사립고에 가고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했으면’ ‘나도 지금은 이렇게 살지만 이명박처럼 한가락하고 싶다, 아니면 내 자식이라도’ 하는 속물스러운 욕심, 저마다의 속물성이 이명박 대통령이 갖춘 온갖 속물성에 감응한 것이다. 그는 남녀노소 전 국민의 속물성을 자극할 만한 속물 판타지의 종합 선물세트와도 같았다.

속물은 그 자신만 알 뿐 누구의 편도 아니다
고학생에서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성공한 기업인, 아들을 히딩크와 함께 사진 찍게 해주는 아버지, 딸에게 건물 하나 안겨서 월세 받아먹고 살게 해주는 자상한 친정 아버지, 아내가 몇 천만원짜리 핸드백을 들고 다니다 사진 찍혀서 구설에 오르게 할 수 있는 재력가 남편,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고 테니스를 즐길 수 있는 럭셔리한 취미생활. 우리는 이런 힘센 그와 한편이라 믿고 싶었고 그가 누리는 것을 누리고 싶었다. 그 소망이 마침내 그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잊고 있었다. 속물은 결코 누구의 편도 아니라는 것을, 속물은 오로지 그 자신만의 편이라는 것을.

거리에 나오는 것만으로는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이명박 퇴진을 외치기 전에 먼저 숨통을 끊어놓아야 할 것은 ‘우리 안의 이명박’이다. 우리 안에 한 명씩 가지고 있는 음습한 이명박, 그를 먼저 끝장내야 한다. 100만명 아니 1000만명이 촛불을 들더라도 우리 안에 있는 이명박을 먼저 퇴진시키지 않는 한, 저 컨테이너 철옹성 안에 있는 진짜 이명박이 퇴진할 확률은 제로다.


고전이란 건 언제 어디서나 자체발광이다.
이미 시선이 굳어져 못보는 것들도 많지만 그들은 우리가 보지 못하건 지켜보고 있건 늘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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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 역간 소요시간은 약 2분으로 소개되어 있다.
7구간이니 14~15분 정도 걸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철도를 탄다.
한국철도공사 홈페이지에서
부산역에서 부전역까지 환승코스로 가는 표를 예매하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4시간 30분 정도면 가뿐하게 도착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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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블로그는 거의 방치상태고, 읽은 책도 최근 것이 없다.
책을 안사게 된 것과 거의 동시에 블로그 포스팅과 독서가 정지되었다. 알라딘에도 거의 안들어가고 있다.
블로그를 너무 버려두는 느낌도 들고 책도 좀 읽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서 일단 예전에 읽었던 글로 포스팅을 하려다가 알라딘에 접속했더니...

한국경제 대안시리즈의 3권이라는 책이 나와 있었다.


저자는 역시 우석훈 선생님이고.
책 소개랑 리뷰가 길게 되어 있었다. 알라딘에서 좋아하는 저자인 모양이다.
88만원 세대가 나왔을 때도 이주의 마이리뷰, TTB리뷰 등에 88만원 세대를 읽고 쓴 서평이 많이 선정되었었고..
특정 저자, 특정 주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구나 싶다.

88만원 세대 포스팅에도 쓰여 있지만 경제 대안시리즈는 시리즈 이름부터 잘못되었다.
경제 대안 시리즈라고 하는데 대안은 책에 없다.
있다고 해도 그게 책의 주된 소재가 아닌데다 좀 우스울 정도로 비현실적이다.

물론 이런 책이 나와서 많은 화제가 되고 그래서 여러사람들이 읽는 건 좋지만
좀 더 정교하게 쓴다면, 그래서 더 질적으로 탄탄한 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88만원 세대가 나온지 1년도 안되어서 또 책이 나왔다는 게,
학문적인 내용이 들어가야 할 법한 책을
10개월정도에 뚝딱 써낼 수 있다는게 놀라운 일이지만 독자의 입장에선 좀 불만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석훈씨는 88만원세대가 뜨고난 후에 많이 바빠졌고, 교수니까 강의도 할테고,
시사IN에 칼럼도 쓰고 있었는데 어떻게 책도 썼을까..

촌놈들의 제국주의, 읽고는 싶지만 기대되지 않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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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람의 죽음이 나를 실신할만큼 슬프게 한다면, 칠만여 명의 죽음에 대해서도 그 깊이를 짐작할수 없을만큼 슬퍼할 줄 알아야 한다. 비록 그들이 나와 다른 국적의 사람일지라도 그들도 본질적으로 나, 그리고 나와 가까운 이들과 다르지 않은 인간이기 때문에.

신문과 뉴스에 나오는 사고들로부터 무감각해지는 것은 슬퍼할 줄 아는 인간의 특권을 내버리는 행위이다. 그러지 말아야지.


한겨레(08. 05. 23) ‘지진처럼 가슴 뒤흔든’ 유언들…중국이 울었다

“엄마 아빠 미안해요. 저 없이도 행복하게 사시길 바래요.” “사랑하는 아가야! 네가 살아난다면, 내가 널 사랑했다는 걸 꼭 기억해주렴.” “나는 꼭 살 거야. 나의 가장 큰 소원은 당신과 소근거리며 평생을 함께 하는 것이야.” 지진의 폐허 속에서 발견된 애절한 ‘유언’들이 13억 중국인들의 가슴을 뒤흔들고 있다.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 숨이 잦아드는 상황에서 마지막 생기를 모아 사랑하는 이들에게 남긴 희생자들의 글은 거대한 지진이 돼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다.

■ 엄마 아빠 미안해요 처음엔 아무런 글자도 보이지 않았다. 종이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것이었다. 뿌연 먼지가 낀 게 콘크리트 더미에서 방금 나온 듯했다. 20일 베이촨중학교에서 실종자를 찾던 구조대원들은 그런 종이조각을 든 채 고개를 떨군 교사가 의아할 뿐이었다. 의아함은 곧 전율로 바뀌었다. 교사가 종이조각을 햇빛에 비추는 순간, 나뭇가지 끝과 같은 날카로운 것으로 꾹꾹 눌러 새긴 글자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매몰됐던 학생이 연필이나 볼펜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남긴 유언이 분명했다. 이 글을 남긴 학생은 이 학교 1학년 1반 장둥화이였다. 붕괴된 건물에 갇혀 사투를 벌이던 그는 부모에게 짤막한 유언을 남겼다. 자신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는 아들의 마지막 편지를 본 부모는 억장이 무너져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 사랑하는 아가야 13일 베이촨의 한 무너진 가옥에서 구조대원들이 그를 발견했을 때, 그는 마치 절을 올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릎을 꿇고, 윗몸을 구부린 채, 두 손으로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위에서 쏟아져내린 건물 잔해에 짓눌린 탓인지, 허리가 많이 무너져 있었다. 그는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그가 결사적으로 품고 있던, 노란 꽃무늬가 그려진 빨간 포대기에선 3~4개월된 아기가 상처 하나 없이 새근새근 숨쉬고 있었다. 한 의사가 그의 품을 헤쳐 포대기를 들어올리자 아기는 곤한 듯 잠에 빠져들었다. 포대기에서 휴대전화가 삐져나왔다. 의사는 무심결에 휴대전화를 들어 화면을 봤다. 거기엔 “사랑하는 아가야!”로 시작하는, 젖먹이에게 남긴 엄마의 마지막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 당신과 평생을 함께 하고 싶어 천젠(26)은 15일 베이촨의 한 콘크리트 더미에서 발견됐다. 콘크리트 3개가 시루떡처럼 쌓여 내리누르는 비좁은 틈에서 그는 무려 73시간을 버텼다.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빗방울로 겨우 목을 축이는 상황에서도 삶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는 구조대원들이 다가오자 “나는 세계 최초로 세 덩어리의 콘크리트를 등에 진 사람”이라며, 오히려 구조대원들을 다독이기도 했다. “나는 꼭 살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게 할 순 없다”는 그의 말에는 비장함까지 어렸다. 당시 그의 아내는 아기를 가진 상태였다. 구조장면을 생중계하던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이 그에게 전화로 아내를 연결해줬다. 그는 숨가쁜 목소리로 “지금 나의 가장 큰 꿈은 당신과 평생을 소근거리며 함께 하는 것이야”라고 말했다. 이게 그의 유언이 됐다. 구조대원들이 10분 뒤 그를 꺼냈을 때, 그는 더는 말을 하지 못했다.(청두/유강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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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박노자 교수가 한겨레21에 쓴 칼럼의 제목이기도 하고, 강준만 교수도 그 글을 읽고 같은 이름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이상은 로쟈의 인문학 서재에서 본 것이다 http://blog.aladdin.co.kr/mramor/1633324)

박노자 교수는 자영업자와 70년대 향수를 그 원인으로 들었고, 강준만 교수는 높은 대외의존도와 '쏠림현상'을 들었는데, 읽을 적에 매우 흥미 있게 읽었다. (제목부터 자극적이지 않은가)

마는, 최근 알게 된 책을 보면, 아마 몇백자 정도 칼럼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yes24에서 가져온 책 소개를 옮겨 놓고, 다음에 기회되면 책을 사서 읽기로 했다. 저자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이 문제란다. 더불어 저자의 다른 저서인<프레임 전쟁>도 염두에 두기로 했다.




 평범한 서민들이 보수 정당에 투표할까? 한국의 경우도 그러하고 미국의 2003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를 보아도 노동계급에 유리한 정당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 가치관, 동일시의 대상으로 선택한다. 진보진영은 선거유세 기간동안 보수진영의 실책에 관한 사실들을 알려주면 사람들이 자신들을 선택할 것이라 믿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생각의 틀’이 사실을 받아 들일 준비가 되었는가이다.

이 책의 제목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는 저자가 대학에서 ‘인지과학 입문’ 강의를 할 때 학생들에게 내주는 과제에서 비롯되었다고한다. 그 과제는 바로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는 것.’그러나,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코끼리를 떠올려야 한다. 따라서 어떤 프레임을 부정하려면, 우선 그 프레임을 떠올려야 한다. 미국 민주당 지지 세력에게 공화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주의 세력의 프레임을 모두 전복할 것을 권유하는 내용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미국 정치를 분석하고 미국 민주당의 승리 전략을 논한 책이긴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문제의식과 분석의 틀은 우리에게도 꽤 재미있고 유용하리라 생각한다. 왜 평범한 서민들이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가 하는 의문과 그 해답을 중심으로, 일상 언어와 정치의 관계를 새롭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선거철이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계급적 이해관계나 정치 성향이 아니라 ‘지역감정’으로 투표하는 것이 사실인 듯하다. 지역색에 따라 선택한 당에 그동안 거듭 실망하고 분노했으면서도, 막상 선거 때가 되면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흔히들 사람은 자기 이익에 따라 행동한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의 유권자들은 과연 이익을 좇아 표를 행사하는 것일까?

상대적으로 지역감정에 얽매이지 않은 지역을 들여다보면 의문이 더욱 커진다. 이를테면 한나라당이 노동자, 농민, 서민을 정치 기반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일 것이다. 한나라당은 고용 안정보다 기업 활동의 자유를, 분배와 지속 가능한 성장보다 신자유주의적 경쟁을 통한 가시적인 성장을 추구한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오지의 농촌에서도, 대규모 공업 단지가 들어선 지역에서도, 서울의 영세 상가 지역에서도 선거에 이긴다. 한때 노동 운동의 성지라는 칭송을 듣고, 전국 최초로 노동자 후보를 국회의원으로 선출했던 울산에서도 보궐선거에서는 노동자 후보를 외면했다(2005년 9월 민주노동당 울산 북구 국회의원 조승수 의원직 상실, 10월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윤두환 당선). 이 사실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이야기하는, 2003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와 자연스레 겹쳐진다.

2003년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공화당 후보로 주지사 선거에 나와 승리했다. 당시 캘리포니아의 노조들은 현임 주지사였던 그레이 데이비스(민주당)가 아널드 슈워제네거보다 서민과 노동자에게 훨씬 유리한 태도를 취한다는 것을 적극 홍보했다. 그러나 “데이비스와 슈워제네거 중 어느 편이 더 당신에게 유리합니까?” 하는 질문에는 거의 대부분 데이비스라고 대답했던 노조원들이, 그런데 누구에게 투표할 예정이냐고 묻자 슈워제네거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 책에 따르면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공화당이 표방하는 가치 체계는 ‘엄격한 아버지’ 모델로 정리할 수 있다. 세상은 위험하고 살기 힘든 곳이며, 아이들은 원래 나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선하게 다듬어져야 한다. ‘엄격한 아버지’는 가족을 지키는 권위자로서, 어머니와 자녀에게 바른 길을 인도하는 사람이다. 자녀가 바르게 성장하려면 고통스런 체벌을 통해 규율을 내면화할 필요가 있다. 규율을 잘 터득한다는 것은 세상에 적응해서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는 말과 같다. 선한 사람은 규율을 잘 터득해서 성공한 사람이고, 성공이 첫째가는 도덕이다. 선한 사람에게 세금을 많이 걷어 사회 복지를 시행하는 것은 악이다. 왜냐하면 선한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서 번 것을 빼앗아 스스로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규율을 잘 터득해서 열심히 일하면, 선한 사람이 받아야 마땅한 성공의 열매를 얻을 수 있다.

반대로 미국의 진보 진영이 표방하는 가치 체계는 ‘자상한 부모’ 모델이다. 세상은 비록 험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좋은 곳이고, 노력하면 더 나아질 수 있다. 아이들은 선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며, 부모는 아이들의 선한 본성을 북돋아 주고, 세상을 더 좋게 만들 책임이 있다. 부모는 자녀를 자상하게 보살피고, 자녀 역시 다른 사람을 보살필 수 있도록 키워야 한다. 따라서 첫째가는 도덕은 ‘보살핌’이다. 보살핌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공감, 곧 타인을 헤아리고 돌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책임, 곧 나 자신과 내가 돌보는 타인을 책임지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엄격한 아버지’ 모델의 가치관과 ‘자상한 부모’ 모델의 가치관을 동시에 가지고서, 처지와 상황에 따라 둘 중 어느 한쪽을 작동한다. 자상한 부모 모델의 가치관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도 수동적으로나마 엄격한 아버지 모델을 이해한다. 때로는 이해의 범위를 넘어서, 자상한 부모식 정치관을 가진 학자가 제자들에게는 엄격한 아버지처럼 돌변하는가 하면, 소외 계층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집안에서는 엄격한 아버지로서 권위를 누리기도 한다. 자상한 부모 세력이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사람들로 하여금 정치적으로 자상한 부모 모델을 선택하게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자상한 부모 모델을 선택하게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이 이 책 속에 들어 있다.


ps. 어김없이 이번 총선에서도 진보진영은 참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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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블로그(블로그코리아 책 분야랭킹 7위다 무려)를 운영하면서 가장 많이 다루어야 할 것은 책에 관한 글, 서평이다. 책에 관한 글을 쓰지 그럼 사진을 찍느냐..라고 농담삼아 반문해보기도 하지만, 그렇게 당연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정작 서평에 관한 스스로 주관을 세우지 못하고 있음을 부끄러워하게 된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에서 다음 글을 옮기며
다음에는 서평에 관한 주제로 직접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마는, 이 글을 포스팅했다는 것은 아마 쓰지 않게 될 것이란 뜻이다.


교수신문(08. 01. 29) '소개’와 ‘비평’ 사이에 놓인 판관의 칼

바늘 가는 데 실 간다고 책이 있는 곳에 서평이 따라붙는 것은 자연스럽다. 서평은 말 그대로 책의 됨됨이에 대한 평이니까 책이란 물건이 존재하는 이상 서평은 불가피하다. 책에 대한 평이라고 했지만 이때 評은 좋고 나쁨 따위를 평가하는 말이다.그럼으로써 값을 매기는 일이다. 책도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것이니까 풀어서 말하자면 한 책에 대해 품평한다는 것은 그것이 어원적 의미 그대로 ‘꼴값’을 하고 있는지를 판별하는 것이다. 그러한 판별을 위해서 보통은 책을 한 번 읽고 마는 게 아니라 한 번 더 읽어야 한다. 적어도 넘겨보기라도 해야 한다. 그래서 리뷰(re-view)다.

이 ‘리뷰’란 말 자체에 ‘비평’이란 뜻도 포함돼 있지만 나는 서평의 존재론적 위치는 책에 대한 ‘소개’와 ‘비평’ 사이가 아닌가 싶다. ‘소개’의 대표적인 유형은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보도자료’와 언론의 ‘신간소개’일 것이다. 그것은 주로 어떤 책의 ‘존재’에 대해서 말한다. 그래서 “어, 이런 책이 나왔네!”란 반응을 유도한다. 반면에 ‘서평’은 그것이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인가를 식별해줌으로써 아직 책을 접하지 못한 독자들의 선택에 도움을 준다. 그것은 일종의 길잡이다. “이건 읽어봐야겠군.”이라거나 “이건 안 읽어도 되겠어.”가 서평이 염두에 두는 반응이다. 그에 대해 ‘비평’은 책을 이미 읽은 독자들을 향하여 한 번 더 읽으라고 독려한다. 그것은 독자가 놓치거나 넘겨짚은 대목들을 짚어줌으로써 “내가 이 책 읽은 거 맞아?”라는 자성을 촉구한다.

물론 소개-서평-비평은 일종의 스펙트럼을 형성하는 것이어서 경계를 확정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책에 관한 담화와 담론들은 이 세 요소들을 약간씩이라도 모두 포함하기 마련이다. 다만 분류는 그 비율과 방점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다. 서평의 존재론적 위치가 그렇게 가늠될 수 있다면 서평의 바람직한 역할이란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적어도 일반론적인 차원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보다 세분해서 서평의 유형학을 가정할 경우에는 초점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서평의 유형은 다양한 기준에 따라 나뉠 수 있는데, 먼저 그 서평의 주체에 따라서 일반독자, 전문독자, 전문가 서평으로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일반독자란 자신의 관심과 흥미에 따라 책을 사서 읽게 되는 보통의 독자를 가리키며, 전문독자는 주로 출판평론가나 도서평론가란 직함을 달고 여러 매체에 정기적으로 북리뷰나 칼럼을 게재하는 이들이나 언론의 출판면 담당기자들이 지목될 수 있다. 그리고 전문가란 서평을 정기적으로 담당하지는 않지만 해당 분야의 전공자로서 식견과 조예를 갖고 있는 이들을 말한다. 물론 이러한 독자 유형 또한 중복 가능하다. 한 사람이 모든 분야의 전문가인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서평의 주체가 이렇게 구분될 수 있다면 바람직한 것은 이들이 유기적인 분업체계를 구축하는 것이겠다.

 번째로, 서평의 또 다른 분류기준은 분량이다. 원고지 매수로 따지자면 5매, 10매, 20매,  30매 등의 유형학이 가능하다. 분량의 제한이 없는 자유서평이 아닌 이상 대개의 ‘공식적인’ 서평들은 분량의 제한을 요구받으며 이러한 분량 자체가 서평의 내용을 상당 부분 한정한다. 어느 정도로 자세하게 평하느냐는 전적으로 이 분량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물론 서평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비평만큼은 아니더라도 보다 많은 분량이 확보될 필요가 있다. 주요한 학술서나 교양서를 평하면서 원고지 10매 분량도 할애하지 않는 것은 ‘서평 문화’ 자체의 피상성을 양산할 따름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서평을 다루는 매체 또한 서평의 분류기준이다. 이것은 서평의 주체와도 얼추 상응하는데, 주로 일반독자들의 서평이 올라오는 온라인서점이나 개인 블로그, 그리고 전문독자들의 리뷰들이 게재되는 일간지, 주간지 등의 언론매체, 끝으로 전공자들의 학술서평이 실리는 학술지 등이 서평의 유형학을 구성한다.
여기서도 물론 바람직한 것은 각 매체별 서평들의 역할 분담이고 특화이다. 매체에 따라서 요구되는 서평의 성격과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네 번째로 거론할 수 있는 것이 그 성격과 내용에 따른 분류이다. 서평은 대상도서의 학술적, 사회적 의의를 거론할 수도 있고, 도서 상태의 문제점과 오류들에 대한 지적으로 채워질 수도 있다.
그것은 곧 책에 대한 권유/만류와도 맞물리는데, ‘반드시 읽어보시길’ 권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간낭비하지 마시길’이라고 충고를 던질 수도 있다. 물론 그 두 가지 양 극단 사이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며 독자의 관점에서 볼 때 바람직한 서평이란 그러한 권유/충고가 요긴하게 사용되는 것이다.

몇 가지 기준에 따라 나열한 대로 우리의 ‘서평 문화’는 다양한 층위의 서평들로 구성되며 따라서 일률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사회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언론 서평의 경우에 신간들 위주의 표면적인 소개보다는 일정 분량 이상이 전제된 깊이 있는 리뷰들이 보다 많이 다뤄지기를 기대해볼 수는 있겠다. 이런 정도의 소감밖에 피력할 수 없는 것은 ‘주요 서평자’로 거명됐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로 해온 일이 본격적인 서평이라기보다는 주변적인 서평 혹은 책에 대한 수다 정도이기 때문이다.

(중략)

물론 지면의 성격과 분량의 제약이 서평의 일차적인 한계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읽을 만한 책을 판별해내고 엉터리 책들을 감시하는 서평의 고유한 자기 역할을 망각하지 않는 것이다. 서평을 통한 학문적 교류에 이르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 


ps. 학문적 교류까지는 내 알바 아니고.. 서평의 역할에 신경쓸 정도도 아닌 것 같다. 난 그저 읽고 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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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는 출범 전부터 까이기 시작했다. 요즘 주간지나 신문을 보면 장관들 문제로 말잔치를 벌이는 데, 언론의 자유가 살아있다는 것을 즐거워 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 정부가 노골적으로 썩었음을 개탄해야 하는 것인가 혼란스럽지만 경제만 살리면 되니까 걱정할 것이 안된다.

하지만 문제는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명박 정부가 경제 성장률 7%는 꿈이다, 6%도 어렵다, 5%도 쉽지않다고 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잃어버린 10년간 우리나라는 4~5% 성장률을 이어왔다.) 성장이 안된다면 분배라도 잘 해야 할 것인데, 새 내각의 장관들을 보면 물음표를 붙일 수 밖에 없다. 저런 사람들이 서민경제를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다음은 아래 칼럼을 읽기 전에 알아야 할 망언들.

박은경 전 환경부 장관 후보자
"친척이 김포 근처에 사는데 좋은 땅이 나왔기 때문에 사라고 권유해 구입했지만 직접 농사를 지어야 하는 줄 몰랐다.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 투기와는 전혀 상관없다."

이춘호 전 여성부 장관 후보자
 "서초동 오피스텔은 내가 유방암이 아니라는 검사 결과가 나오자 남편이 감사하다고 사준 것이다." "일산 오피스텔은 친구에게 놀러 갔다가 사라고 해서 은행 대출 받아 샀다"

이명박 대통령
 "평소 라면을 먹지 않는 계층은 라면 값 100원이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지만 라면을 많이 이용하는 서민들에게는 라면 값 인상이 큰 부담을 준다"

김성이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표절이 아니라 열정"
남주홍 전 통일부 장관 후보자 "부부 교수가 30억원이면 양반"
유인촌 문화부 장관 "배용준은 그보다 더 많지 않느냐" (그의 재산 신고액은 140억원)



경향신문(08. 03. 06) [이대근칼럼] 라면값 걱정하는 부자들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용기있는 고백으로 이끌었을까. ‘나는 땅을 사랑할 뿐이다’. ‘사랑은 무죄’라는 관습법이었을까.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랑은 없다는, 도저한 낭만주의였을까. 사랑은 아름다운 죄라서 용서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었까. 아니면, 땅을 사랑할 줄 모르는 서민들을 일깨우려는 충정이었을까. 부자들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를 계속해 보자. 어떤 남편은 암에 걸리지 않았다고 오피스텔 한 채를 아내에게 선물한다. 어떤 아버지는 수석입학 한 딸이 성적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국적을 포기하게 한다. 그들이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은 이 유별난 사랑만이 아니다.

부부교수가 25년간 30억원 버는 것은 식은죽 먹기라는 식의 독특한 관점, 여의도가 사람살기에 좋은 곳이 못된다는 남다른 주거관념도 그들을 특별하게 한다. 맛있는 과자를 먹었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구멍가게로 달려가는 어린이처럼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친구가 사라고 하는 바람에 오피스텔 한 채를 샀다는 동심의 소유자도 있다. 그들은 35만원짜리 비눗갑, 4000만원짜리 붙박이장이 있는 오피스텔을 가진 진정한 부자이지만, 의외로 싸구려를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놀랍게도’ 1억, 2억원짜리 싸구려 골프회원권을 갖고 있는 이도 있고, 한 해 혹은 두 해마다 전세 월세를 옮겨 다니는 서민보다 더 딱하게도 여름과 겨울철마다 옮겨 살아야 하는 처지에 있는 이도 있다.

- 몸에 밴 부유함 드러낸 장관들 -
그들이 솔직한 성격이라서 이런 부자의 생태를 공개한 것은 아닐 것이다. 말실수로 그랬을 리도 없다. 그럴 듯하게 거짓말하거나 임기응변하는 재주가 없어서 그랬던 것도 아닐 것이다. 그들의 몸에 밴 부자로서의 생활습관은 한 마디를 해도 드러날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꾹꾹 눌러 감춘다 해도 그들의 부유함과 그 부유함에서 묻어나오는 남다른 생활방식의 노출은 그들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무작정 비난해서는 안된다.

사실 딸의 스트레스 원인을 한국인이라는 사실에서 찾든 말든, 아내에게 오피스텔 한 채를 선물하든 말든, 계절에 맞게 여름집·겨울집을 바꿔가며 살든 말든, 자기 딸은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라고 우기든 말든 신경 쓸 게 없다. 서민들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일이다. 그게 부자들이 사는 법이려니 하고 가볍게 넘기면 그만이다. 그렇게 마음먹으면 설사 그들이 잠시 보통 사람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해도 어지러워진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 바라건대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은 서민과 깊숙이 관계맺어야 하는 운명이다. 국무위원이자 장관인 이 부자들은 자신의 삶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서민을 위해 일하고, 자신의 고민거리도 관심사도 아니었던 문제에 매달려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명박이 대통령으로서 첫 국무회의에서 이 부자들에게 민생을 챙기라고 지시함으로써 이 사태는 분명해졌다. 그들은 이제 라면값 100원 인상의 고통을 체감하지 못하면 상상력을 발동해서 이해해야 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서민들은 그들의 인생과 무관한 부자들의 말이라고 한쪽 귀로 듣고 다른쪽 귀로 흘려보낼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하게 됐다.

부자들이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가. 이명박은 서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서민 대통령 이미지를 갖고 있다. 부자정부 이미지가 부담스럽다면 ‘서민 대통령’만한 보호막이 없다. 선거 때 시장통 아주머니·할머니가 이명박의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며 서민 좀 먹고 살게 해달라고 호소하던 장면이 아직 생생하다. 사실 많은 서민이 자기의 꿈과 소망을 성장을 기반으로 한 경제살리기에 걸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이제 와서 7%성장은 이룰 수 없는 꿈이고, 6% 성장도 어렵다고 고백했다. 총선은 눈 앞에 있는데 5% 성장도 쉽지 않다고 한다. 이것이 이명박이 부자 내각에 민생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한 배경이다.

- 서민 고통 해결사 맡긴 부조화 -
우리는 곧 이들이 서민을 위해 애쓰는 장면을 자주 보게 될 것이다. 좋다. 부자들이 서민을 위해 잘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라면 값 100원 인상문제를 왜 35만원짜리 비눗갑을 쓰는 이들이 해결해야 한다는 건지. 왜 가난한 이들은 자기의 슬픔과 분노와 고통과 꿈을 부자들에게 의탁해 풀려고 하는지. 왜 대표하는 자와 대표되는 자는 이렇게 어긋나고야 마는지. 이 부조화, 어긋남이 목엣가시처럼 불편하다.(정치·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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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선생님(이라고 하는게 맞으려나)이 쓴 칼럼이다.

주간지에 이런 글이 실릴 정도라면
이제 문헌정보학과가 각광받게 될 날을 기대해도 되지 않으려나 싶기도 하다.
강의실에서야 많이 들었던 이야기지만 비전공자들은 사실 이런 이야기들 모르지 싶다.

주석은 내가 쓴 것이다. 함부로 옮겨온 데다 주석까지 달다니 무례하다.

시사인(08. 02. 26) 도서관에 전문 사서가 없다

얼마 전부터 신문 안 본다는 게 자랑이 된 사람이 많다. 신문사도 좀 반성해야 할 것 같다. 신문이 신문다워야 볼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서 좀 생각해보면 좋겠다. 어쨌든 사람들이 신문도 안 본다는 것은 사회의 위기이다. 그렇다면 잡지나 계간지는 보고, 책은 좀 읽는가? 다른 것도 별로 안 보는 게 우리나라 실정인 것 같다.

유럽에서 부러운 게 몇 가지 있다. 파리에서 할머니들이 아침마다 신문과 잡지를 사들고 커피 마시는 장면은 솔직히 부럽다. 더 부러운 장면은 아인슈타인이 다녔다는 취리히 공과대학에서 볼 수 있다. 할머니들이 이 도서관 소파에 앉아 책을 보는 모습이다. 스웨덴과 더불어 가장 먼저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넘은 스위스에서는 흔한 장면이다.

한국에서는 책 읽고 잡지 보는 모습을 대학 도서관에서도 보기 어렵다. 그 자리를 고시 책과 취업 서적이 휩쓸고 있다. 우습지만 한국에서 책 읽는 사람을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은 스타벅스이다. 유럽에서도 일부 도시에서는 스타벅스가 성업 중이긴 한데, 정말로 신문·서적·잡지를 많이 보는 도시에서는 스타벅스에서 책 읽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참 부러운 유럽 도서관의 책 읽는 풍경

내가 만나본 최고의 전문직 사서는 취리히에 있다. 영문학과 생물학 석사 학위를 가진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이며, 나보다 키가 큰 북구형 미인이다. 일주일에 이틀 일하는데, 뭐든지 주제어만 말하면 책을 찾아다 준다. 한국에서는 이런 전문 사서가 서울대에도 없다. 서울대 사서는 순환 보직으로 전문 사서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니 제도를 탓해야 한다.[각주:1]

내가 만나본 최고의 서점 직원은 프랑스의 교보문고라 할 조셉 지베르의 직원들이다. 소르본 대학을 졸업한 그들은 책을 분류하고 관리하며, 책 파는 것을 천직으로 여긴다. 반면 교보문고에 가보시라. 점원에게 책 위치를 물어봤다가는 속 터진다.[각주:2] 당연하다. 그들은 비정규직이고, 파견직이다. 괜히 말을 걸었다가 서로 민망스러운 일이라도 생길까 봐 말을 거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문 사서와 서점의 전문 직원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그 사회에 지식의 축적을 돕고 원활하게 만드는, 그야말로 지식사회의 전사이기 때문이다. 더도 말고, 20대 딱 1000명을 정규직 서점 직원으로 채용하고, 이들의 월급을 보조해주자. 영화서적 전문, 미술서적 전문, 음악서적 전문…, 멋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들이 일할 수 있는 지역의 전문 서점도 지정해서 지원해주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긴! 잘사는 나라가 된다. 이건 큰 힘 안 들이고 바로 할 수 있는 일이며 효과도 확실하다. 10년 후, 이들이 자기 전문 영역에서 전문 서점을 1000개 만든다고 생각해보라. 이런 게 바로 지식사회다.

최근 프랑스 책방연합회에서 <도서관 경제학>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책이 살아야 신문도 살고, 신문이 살아야 책도 산다. 그래야 전문 잡지도 산다. 여기에 좌파·우파가 있겠는가? 같이 힘써야 할 일이다. 운하에 들일 힘 100분의 1만이라도 지식 축적에 쏟았으면 좋겠다.(우석훈_성공회대 외래교수)

08. 02. 28.


추. '88만원 세대'때도 느꼈지만 우석훈 선생님은 '이렇게 쉬운데 왜 안하냐'고 하는데 그렇게 하기가 사실 쉽지가 않은 것 같다. 모르시는 건 아니겠지만 아마도 그게 글쓰는 스타일 듯 하다.

'왜 안하냐'에 대해 굳이 내가 생각하는 답을 적자면, 정치인은 아무래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행동 동기를 가지고 움직이기 때문이거나 실제 사회문제에 대해선 거의 관심이 없는 때문이 아닐까 싶다.

  1. 대학도서관에 주제 전문 사서가 있긴 하다.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그들만 알기 때문에 문제지만 [본문으로]
  2. 대형 서점보다 내가 자주 이용하는 작은 서점에선 의외로 빠르게 찾아 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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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이었던가 주간지였던가에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책 소개를 봤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것이 싫어서, 내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남들이 말하는 것이 싫은 것도 내가 책을 읽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다.

물론 상대방이 그 책을 읽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경우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느 구석에서는 껄끄러운 마음이 남아있는 것을 경험한다.
영화, TV드라마에 대해선 "나 그거 안봤는데"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면서
(심지어 태극기 휘날리며, D-워, 실미도, 살인의 추억 같은 '국민영화'들에 대해서도!!)
모르는 책, 제목만 들어본 책 이야기가 나올땐 한없이 작아지는 이유는 뭘까.

이 책도 뭐, 예고편이 다인 한국영화처럼 서평이 다인 책이겠지만
제목을 보고 끌리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합뉴스(08. 02. 21)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영문학과 교수가 '햄릿'의 텍스트를 읽어본 적이 없으며 로렌스 올리비에의 영화 '햄릿'만 봤다고 털어놓는다면?. 그가 정말로 햄릿을 안 읽었다고 믿는 사람보다는 그가 굳이 그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책 읽는 문화가 시들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교양인'의 필수덕목으로 불리는 현실에서 책읽기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대화에서 언급되는 책들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거나, 얘기만 들었거나, 대충 읽었거나, 읽었는데도 내용을 거의 잊어버린 경우의 '죄책감'과 '수치심'은 누구나 경험한다. 그래서 "당신 이 책 읽었어요?"라고 묻는 것은 지식인 사회에서 일종의 금기다.



파리 8대학 프랑스문학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인 피에르 바야르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여름언덕 펴냄)에서 "교양 있는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자만이 자기 진실에 이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책을 읽지 말라고 조언하는 책으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저자는 안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법을 들려주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책 읽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찾아갈 수 있는 책을 골라 읽는 기쁨을 이야기한다.

로베르트 무질이 쓴 소설 '특성없는 남자'에 나오는 도서관 사서 이야기는 비독서인에게는 위안이 된다. 350만권이 쌓인 도서관의 사서는 "카탈로그만 본다"며 "책의 내용 속으로 코를 들이미는 자는 도서관에서 일하긴 글러먹은 사람이오! 그는 절대로 총체적 시각을 가질 수 없단 말입니다"라고 강변한다.


폴 발레리가 책 안 읽기의 대가였다는 것도 재미있다. 그는 책에 파묻혀 산 아나톨 프랑스를 '책벌레'라고 놀렸고, 마르셀 프루스트가 죽자 "설령 내가 그의 방대한 저작을 단 한 줄도 읽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지드나 도데처럼 서로 전혀 다른 정신의 소유자들이 그의 중요성에 관해 일치된 견해를 보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의혹을 떨쳐버리기에는 충분하다"고 뻔뻔스럽게 평론을 썼다.

저자는 움베르토 에코가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연쇄살인의 도구로 설정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등 실제로 읽은 사람은 별로 없지만 엄청나게 인용되고 있는 고전에 대해서는 "꼭 읽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일찌감치 버리라"고 조언한다. 저자는 펼쳐보지도 않은 책에 대해 강의하는 경우가 많다고 고백하면서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느낌에서 해방돼 '책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조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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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발란스에서 진행중인 이벤트. 웹진을 퍼가고 주소를 남기면 추첨을 통해서 신발을 준다고 한다. 내 블로그에는 뭔가 부적절해보이고, 만만한게 동생 블로그. 거기다 적당한 카테고리까지 존재하고 있다. 만약에 받게되면 어차피 자기도 신을테니까 별말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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